고려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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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高麗靑瓷)는 고려 시대에 만든 푸른빛 자기로, 12세기 전반 '비색'이라 불린 맑은 비취색 순청자를 완성하고 12세기 중엽 무늬를 파내 다른 흙을 메워 넣는 상감 기법으로 상감 청자를 꽃피웠다.
청자는 철분이 조금 든 흙으로 그릇을 빚고 철분이 섞인 유약을 입혀, 가마 속 공기를 줄인 환원 불꽃으로 구워 푸른빛을 낸다. 우리나라는 9세기 후반~10세기 무렵 중국 저장성 월주요 청자의 영향을 받아 서해안·남해안 일대에서 청자를 굽기 시작했다. 이후 전라도 강진(대구면 사당리 일대)과 부안(보안면·진서면)의 가마가 개경과 이어진 관요처럼 운영되며 최고급 청자를 생산했다.[1]
- 초기(10~11세기) - 굽 모양이 햇무리 같은 햇무리굽 청자를 만들며 중국 양식을 점차 고려식으로 바꾸어 나갔다.
- 순청자 전성기(12세기 전반) - 인종 무렵 독특한 비색 유약을 완성했다. 1123년 송의 사신으로 온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고려 사람들이 청자 빛깔을 '비색'이라 부른다고 기록했고, 송의 태평노인은 『수중금』에서 고려 비색을 천하제일로 꼽았다. 인종 장릉에서 나왔다고 전하는 참외 모양 병이 이 시기를 대표한다.
- 상감 청자 전성기(12세기 중엽) - 의종 무렵 상감 기법과 무늬 구성이 가장 뛰어났다. 1159년에 죽은 문공유의 무덤에서 나온 상감 대접이 기준 작품이다. 1157년(의종 11) 청자 기와를 구워 궁궐 정자 지붕을 덮었다는 기록도 있다.
- 쇠퇴(13~14세기) - 무신 집권과 몽골 침입 이후 빛깔이 흐려지고 무늬가 거칠어졌다. 원 간섭기에는 원 양식의 영향도 받았다. 고려 말 거칠어진 상감 청자가 조선 초 분청사기로 이어졌다.
- 상감 - 그릇 표면에 무늬를 파내고 그 자리에 흰 흙(백토)이나 붉은 흙(자토)을 메운 뒤 유약을 입혀 구우면 흰색·검은색 무늬가 나타난다. 금속·나무 공예의 상감(입사·나전)을 도자기에 응용한 것으로, 고려가 독자적으로 발전시켰다.
- 동화(진사) - 구리 안료로 붉은빛을 내는 기법으로, 중국보다 앞서 썼다.
- 음각·양각·투각 - 무늬를 새기거나 도드라지게 하거나 뚫어서 나타냈다.
- 상형 청자 - 사자·용·오리·참외·표주박 같은 사물 모양을 본뜬 그릇. 머리는 용, 몸은 물고기인 어룡 모양 주전자, 거북 모양 주전자, 사자 모양 뚜껑 향로처럼 주전자·향로·연적 등에 많이 쓰였고, 12세기 순청자 전성기에 크게 유행했다.
-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 - 학과 구름을 원 안팎에 새긴 매병. 상감 청자의 대표작이다.
- 청자 상감 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 표주박 모양 몸체에 손잡이와 귀때를 단 주전자. 고려 청자 주전자는 이처럼 표주박·참외 모양이 많다.
- 청자 투각 칠보문 뚜껑 향로 - 토끼 세 마리가 받친 향로로 투각·상형 기법이 어우러졌다.
- 청자 상감 모란국화문 참외모양 병 - 참외 모양 몸체에 모란과 국화를 번갈아 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