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산성 전투
IT 위키
더 많은 작업
관산성 전투(管山城 戰鬪)는 554년 백제 성왕이 가야·왜와 함께 신라의 관산성(지금의 충청북도 옥천)을 공격했다가 성왕이 전사하고 크게 패한 싸움으로, 이로써 120여 년 이어진 나제 동맹이 완전히 무너졌다.
- 초반 - 554년 백제는 태자 여창(뒤의 위덕왕)을 앞세워 가야·왜의 원군과 함께 관산성을 공격했다. 처음에는 백제가 우세해 각간 우덕과 이찬 탐지가 이끈 신라군을 물리쳤다.
- 성왕의 전사 - 신주 군주 김무력이 군사를 이끌고 오자 큰 싸움이 벌어졌다. 성왕은 싸움터의 태자를 위로하려고 보병과 기병 50여 명만 거느리고 밤길을 가다가 구천(옥천 부근)에서 신라 복병에게 걸려 죽었다. 『삼국사기』는 삼년산군(보은)의 고간 도도가 백제왕을 죽였다고 적었다.[3] 『일본서기』는 성왕이 사로잡혀 목이 베였고 그 머리가 신라 관청 계단 아래에 묻혔다고 전한다.[2]
- 피해 - 『삼국사기』는 이 싸움에서 백제의 좌평 4명과 군사 29,600명이 죽고 "한 필의 말도 돌아가지 못했다"고 적었다.[3]
433년 무렵부터 고구려의 남진에 맞서 이어 온 나제 동맹이 완전히 깨졌고, 두 나라는 백제가 망할 때까지 적대 관계를 이어 갔다. 신라는 한강 유역을 굳게 차지해 인적·물적 자원을 늘리고, 당항성을 통해 중국과 직접 오갈 길을 얻어 삼국 통일의 발판을 마련했다. 백제에서는 전쟁에 반대하던 원로 귀족의 발언권이 커지면서 왕권이 약해졌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