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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眞興王, ?~576, 재위 540~576)은 신라의 제24대 왕으로, 한강 유역과 대가야를 차지해 영토를 크게 넓히고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키웠으며 『국사』를 편찬하게 해 삼국 통일의 기틀을 닦았다.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법흥왕의 조카이자 외손자로, 이름은 삼맥종 또는 심맥부이다. 즉위할 때 나이가 『삼국사기』에는 7살, 『삼국유사』에는 15살로 달리 적혀 있다. 어린 나이에 즉위해 어머니 지소부인이 섭정했고, 551년 연호를 건원에서 개국(開國)으로 바꾸면서 직접 정치를 이끌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1][2]

  • 단양 적성 진출 - 550년 무렵 고구려 땅이던 충북 단양에 진출하고 「단양 신라 적성비」를 세웠다.
  • 한강 유역 차지 - 551년 백제와 함께 고구려를 쳐서 한강 상류 10군을 얻었다. 553년에는 백제가 되찾은 한강 하류까지 빼앗아 신주를 두었다. 이로써 나제 동맹이 깨지고 신라는 서해로 나가 중국과 직접 통하는 길을 얻었다.
  • 관산성 전투(554) - 반격해 온 백제 성왕을 관산성(옥천)에서 죽이고 크게 이겼다.
  • 대가야 정복(562) - 이사부와 화랑 사다함을 보내 대가야를 무너뜨려 낙동강 서쪽의 가야 땅을 모두 차지했다(→ 가야). 사다함은 상으로 받은 포로 200명을 풀어 양인으로 삼았다.[3]
  • 순수비 - 넓힌 땅을 돌아보고 북한산(555년 순행)·창녕(561)·황초령·마운령(568)에 비석을 세웠다. 동북쪽으로는 지금의 함경남도까지 나아갔다.[1]
  • 『국사』 편찬(545) - 이사부가 "나라의 역사를 남기지 않으면 후대에 무엇을 보이겠느냐"고 건의하자 거칠부 등에게 『국사』를 엮게 했다.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 화랑도 - 귀족 자제 가운데 화랑을 뽑아 따르는 낭도와 함께 산천을 다니며 도의와 무예를 닦게 하고, 전쟁 때는 싸움에 나서게 했다. 『삼국사기』는 576년(진흥왕 37) 여성 중심의 원화를 없애고 화랑을 처음 받들었다고 적었으나[4], 562년 대가야 정벌 때 이미 화랑 사다함이 활약했으므로 실제 개편은 그보다 앞선 것으로 본다.[1]
  • 불교 진흥 - 544년 흥륜사를 완성하고 백성의 출가를 허락했다. 553년부터 황룡사를 지어 566년 완공하고, 574년 장륙존상을 모셨다. 고구려에서 온 승려 혜량을 승통으로 삼아 교단을 정비했고, 572년 전사한 군사를 위해 팔관회를 열었다. 스스로 불교의 이상적 군주인 전륜성왕을 자처해 두 아들을 동륜·사륜(철륜)이라 이름 지었다. 말년에 머리를 깎고 법운이라는 법명을 썼다.
  • 가야금 - 대가야에서 망명한 우륵을 국원(충주)에 살게 하고 제자를 기르게 해 가야금을 신라 궁중 음악으로 삼았다.
  • 연호 - 개국(551)·태창(568)·홍제(572)를 차례로 썼다.

신라 중고기 왕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사실 왕
국호를 신라로 정하고 왕호를 씀, 우산국 정복, 동시전 설치 지증왕
병부 설치, 율령 반포, 불교 공인, 금관가야 병합 법흥왕
한강 유역 차지, 대가야 정복, 화랑도 개편, 『국사』 편찬 진흥왕
원광의 걸사표, 위화부 설치 진평왕
첨성대·분황사, 황룡사 9층 목탑 선덕 여왕
  1. ↑ 1.0 1.1 1.2 진흥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2. ↑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 진흥왕 12년(551) 정월, 연호를 개국으로 바꾸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3. ↑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 진흥왕 23년(562) 9월, 가야를 토벌하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4. ↑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 진흥왕 37년(576), 화랑을 받들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