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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입국 조서(敎育立國詔書, 1895)는 1895년 2월 2일 고종이 교육으로 나라를 일으키겠다는 뜻을 밝혀 반포한 조서로, 근대 학교 제도를 세우는 출발점이 되었다.

2차 갑오개혁 때 반포되었다. 1894년 1차 개혁에서 교육을 맡은 학무아문을 두었고, 1895년 1월 홍범 14조에서도 외국 유학과 새 학문 수용을 밝혔으나, 온 국민을 대상으로 새 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이 조서가 처음이다. 교육조서라고도 한다.[1]

  • 나라의 부강은 국민의 지식이 밝아지는 데 달려 있고, 그 근본은 교육이라고 밝혔다.
  • 옛 교육처럼 글귀를 외우는 데 그치지 말고 실제에 쓸모 있는 교육을 하자고 했다.
  • 교육의 세 가지 목표로 덕양(德養, 덕성), 체양(體養, 신체), 지양(智養, 지식)을 내세웠다.
  • 왕실이 앞장서 학교를 널리 세우고 인재를 기르겠다고 다짐했다.

이후의 학교 제도

편집 원본 편집
  • 한성 사범 학교 관제(1895년 4월) - 교원을 길러 내는 관립 사범 학교를 세웠다. 근대 교육 법령 가운데 첫 번째였다.
  • 외국어 학교 관제(1895년 5월) - 일어·영어 등 외국어 학교를 정비했다.
  • 소학교령(1895년 7월) - 관립·공립 소학교를 세워 초등 교육을 시작했다.
  • 이어 대한 제국 때 중학교·의학교·상공 학교 관제 등이 마련되었다.

다른 근대 교육 기관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사실 해당
1895년 반포, 덕양·체양·지양, 한성 사범 학교 관제로 이어짐 교육 입국 조서
1883년 덕원·원산 관민이 세운 최초의 근대적 사립 학교 원산 학사
1886년 정부가 세운 관립 학교, 미국인 교사 초빙 육영 공원
1896년 서재필이 창간한 순한글 신문 독립신문
  1. ↑ 교육조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