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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가야(金官伽倻)는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를 중심으로 성장한 가야의 나라로, 질 좋은 철을 생산해 낙랑과 왜에 수출하며 전기 가야 연맹을 이끌다가 532년 신라에 병합되었다.

본가야·가락국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는 42년 하늘에서 내려온 알에서 태어난 김수로가 나라를 세웠다고 전한다. 낙동강 하구라는 바닷길과 강길이 만나는 자리에 있어 일찍부터 교역의 중심이 되었다.[1]

  • 철의 나라 - 풍부한 철을 생산해 낙랑·대방과 왜에 수출했다. 철을 일정한 크기로 만든 덩이쇠는 화폐처럼 쓰였다.
  • 전기 가야 연맹 - 3세기 무렵 변한 지역의 여러 소국을 이끄는 맹주가 되었다.
  • 쇠퇴 - 400년 고구려 광개토 대왕이 신라를 도우려 보낸 군대가 가야 지역까지 쳐들어와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가야 연맹의 중심은 고령의 대가야로 옮겨 갔다(후기 가야 연맹, → 가야).
  • 멸망 - 532년 마지막 왕 김구해(구형왕)가 신라 법흥왕에게 항복했다. 신라는 왕족을 진골로 대우했고, 그 후손 가운데 김유신이 나왔다.
  • 김해 대성동 고분군 - 금관가야 지배층의 무덤. 덩이쇠·철제 갑옷·북방계 유물이 나왔다.
  • 김해 봉황동 유적 - 조개더미와 생활 유적.

다른 나라의 경제와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사실 나라
낙랑과 왜에 철을 수출함 금관가야(변한)
집집마다 부경이라는 창고가 있음 고구려 (→ 한반도의 초기 국가)
활구(은병)를 만들고 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 고려
동시전을 두어 시장을 감독함 신라 (→ 동시전)
  1. ↑ 금관가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