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인 국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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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인 국민회(大韓人國民會, 1910~1945)는 1910년 미국에서 미주·하와이의 한인 단체들이 하나로 합쳐 출범한 독립운동 단체로, 『신한민보』를 펴내고 해외 한인 사회를 대표하며 광복 때까지 미주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 지방 총회 - 미국 본토에 북미 지방 총회, 하와이에 하와이 지방 총회를 두고 멕시코에도 지방회를 두었다. 1911년에는 시베리아(연해주)와 만주에도 지방 총회를 세워 해외 한인을 아우르려 했다.
- 중앙 총회 - 1911년 중앙 총회를 세우고 191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각 지방 총회 대표 회의를 열어 재외 한인의 권익을 대변하는 최고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1914년 안창호가 중앙 총회장을 맡았다.[3][1]
- 『신한민보』 - 공립 협회의 『공립신보』와 합성 협회의 『합성신보』를 이어받은 기관지로, 순 한글로 매주 펴내며 일제의 침략을 비판하고 국내외 소식을 전했다. 3.1 운동 때는 국내 소식을 빨리 알리려고 격일로 펴내기도 했다.[2]
- 독립운동 지원 - 미주 한인들의 성금을 모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을 도왔다.
1941년 대한인 국민회를 비롯한 미주와 하와이의 한인 단체들은 독립운동을 하나로 모으려고 재미 한족 연합 위원회를 만들었다.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고 임시정부가 일본에 선전 포고를 하자, 연합 위원회는 국방과를 새로 두고 한인 부대를 꾸리겠다는 계획을 미 육군에 내 허가를 받았다. 1942년 2월 15일 로스앤젤레스에서 한인 국방 경위대(맹호군)가 창설되었고, 2월 20일 임시정부의 인준을 받았으며 4월 캘리포니아 주 정부의 인가를 받았다. 매주 훈련을 받으며 미군 지휘 아래 비정규군으로 대일전에 나설 태세를 갖추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