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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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安昌浩, 1878~1938)는 독립 협회·신민회·흥사단·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며 교육과 실력 양성으로 독립을 이루려 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다.
호는 도산(島山)이고 평안남도 강서 출신이다. 개인의 인격을 새롭게 하는 것이 민족을 새롭게 하는 길이라 보고, 무실역행(참되기를 힘쓰고 힘써 행함)을 강조했다. 국내에서는 애국 계몽 운동을, 미국에서는 동포 사회의 조직을, 중국에서는 임시정부 활동을 이끌었다. 1932년 윤봉길 의거 뒤 상하이에서 붙잡혀 국내로 끌려왔고, 1937년 수양 동우회 사건으로 다시 갇혔다가 병으로 풀려나 1938년 세상을 떠났다.[1]
- 독립 협회 - 1897년 독립 협회에 들어가 평양 지회를 맡았고, 1898년 서울 종로의 만민 공동회에서 연설했다. 1899년 고향 강서에 점진 학교를 세웠다.
- 미국 공립 협회 -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가 190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공립 협회를 세우고 『공립신보』를 펴냈다.
- 신민회 - 을사늑약 소식을 듣고 귀국해 1907년 양기탁 등과 비밀 결사 신민회를 만들었다.
- 대성 학교와 태극 서관 - 1908년 평양에 중등 교육 기관인 대성 학교를 세웠다. 평양·대구에 출판사·서점인 태극 서관을, 평양에 자기 회사를 세웠다.
- 청년 학우회 - 1909년 최남선 등과 만든 청년 수양 단체이다.
- 흥사단 - 1910년 망명한 뒤 191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청년 학우회를 잇는 흥사단을 세웠다. 1914년 대한인 국민회 중앙 총회장이 되었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 1919년 상하이로 가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내무 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를 맡아 연통제를 만들었다. 1923년 국민 대표 회의에서는 부의장을 지냈다.
- 1930년 이동녕·김구 등과 한국 독립당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