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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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제사(同濟社, 1912)는 1912년 중국 상하이에서 신규식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독립운동 단체로, 교민의 단결을 꾀하고 중국 혁명 세력과 손잡아 상하이 독립운동의 바탕을 마련했다.

- 신아 동제사 - 중국 혁명 지도자들과 더 긴밀히 연대하려고 쑹자오런·천치메이·후한민 등 중국 국민당 인사들을 끌어들여 신아 동제사를 만들었다. 독립운동에 대한 중국인의 지지를 얻으려는 것이었다.[2]
- 박달 학원(1913) - 1913년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 세운 교육 기관으로, 박은식·신채호 등이 가르쳤다. 세 차례에 걸쳐 100여 명을 길러 중국 대학과 미국·유럽 유학을 주선했다. 한국 청년 100여 명을 중국 각지의 군사 학교에 입학시키기도 했다.[1]
- 조선 사회당(1917) - 1917년 스톡홀름에서 국제 사회주의자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한국 독립을 호소하려고 잠시 '조선 사회당'이라는 이름을 썼으나, 대회가 무산되면서 흐지부지되었다.[1]
- 신한 청년당과 임시정부 - 1918년 동제사의 젊은 회원이던 여운형·선우혁·서병호·조동호 등이 신한 청년당(신한 청년단)을 만들었고, 두 단체는 긴밀히 협력했다.[2] 신한 청년당은 김규식을 파리 강화 회의에 대표로 보내고 단원들을 일본·국내로 보내 2.8 독립 선언과 3.1 운동의 분위기를 만들었으며, 1919년 4월 상하이에 차린 독립 임시 사무소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모체가 되었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