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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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학사(耕學社, 1911~1912)는 국권 상실 뒤 신민회 인사들이 서간도 유하현 삼원보로 집단 이주해 만든 한인 자치 단체로, 부설 기관으로 신흥 강습소를 세워 독립군 양성의 터전을 마련했다.

1910년 무렵 신민회는 국외에 독립운동 기지를 세우고 무관 학교를 열기로 했다. 그해 여름 이회영·이동녕 등이 서간도를 둘러보고 유하현 삼원보를 터로 정했다. 1910년 말부터 1911년 초까지 이회영 6형제와 이상룡·김창환·이동녕·여준 등이 재산을 정리하고 가족과 함께 삼원보로 옮겨 땅을 사들였다.[1]
- 결성 - 1911년 4월 삼원보 고산자(대고산)에서 300여 명이 모인 노천 대회를 열고, 민단적 자치 기관인 경학사를 만들기로 결의했다. 이름은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공부한다는 '주경야독'에서 따왔다.[2]
- 임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독립기념관 자료는 사장 이철영, 부사장 이상룡으로 적는다. 이상룡을 초대 사장으로 소개하는 자료도 있다.[3]
- 목표 - 모두 농사짓는 개농주의로 생계를 꾸리고, 학교를 세워 인재를 기르며, 옛 군인을 다시 훈련해 무장 투쟁의 간부로 삼는 것이었다.
- 신흥 강습소 - 경학사의 부설 기관으로 세운 학교로, 소장은 이동녕이었고 대한 제국 무관 학교 출신들이 교관을 맡았다.
1911년과 1912년 서리와 흉작이 겹치고 풍토병이 돌아 경학사는 운영이 어려워졌다. 1912년 근거지를 통화현 합니하로 옮기면서 경학사를 이은 자치 조직 부민단이 만들어졌다. 부민단은 1919년 3.1 운동 직후 한족회로 바뀌었고, 한족회는 군사 기관인 서로 군정서를 두고 신흥 강습소의 뒤를 이은 학교를 신흥 무관 학교로 키웠다. 이곳 출신들은 1920년 청산리 전투 등 무장 독립 전쟁의 주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