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한인 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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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한인 이민(1905)은 1905년 4월 한국인 1,033명이 인천항을 떠나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에네켄(용설란) 농장에 계약 노동자로 건너간 일로, 중남미 한인 사회의 시작이다.

유카탄의 에네켄 농장주 단체를 대리한 중개업자 마이어스가 일본의 대륙 식민 회사와 손잡고 한국에서 노동자를 모았다. 하와이 이민이 정부 사이의 일로 진행된 것과 달리 중개업자가 주선한 계약 노동 이민이었다.[1] 1905년 4월 4일 1,033명의 이민자가 인천항에서 배에 올라 멕시코로 향했다. 이들은 유카탄주 메리다 일대 20여 곳의 에네켄 농장에 나뉘어 4년 계약으로 일했다.[2] 에네켄은 밧줄과 노끈을 만드는 섬유 원료로, 밀 수확이 기계화되어 포대를 묶는 굵은 밧줄 수요가 늘면서 멕시코 최대의 수출품이 되어 있었다.[3]
- 메리다 지방회(1909) - 1909년 5월 9일 메리다 일대 16개 농장의 대표 등 70여 명이 모여 대한인 국민회 메리다 지방회를 세우고 이근영을 회장으로 뽑았다. 지방회는 한인의 권익을 지키고 자치 규정을 만들어 한인 사회를 이끌었다.[4]
- 숭무 학교(1910) - 대한 제국 군인 출신 한인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군 장교를 기르는 숭무 학교를 세웠다. 멕시코 혁명으로 1913년 문을 닫았다.[4]
- 독립 자금 - 1919년 3.1 운동 소식이 전해지자 메리다 지방회는 달마다 한 사람 1페소씩 거두는 등 어려운 형편에도 독립 자금을 모아 대한인 국민회에 보냈다. 파리 강화 회의 대표 파견을 위한 특별 의연금도 걷었다.[4]
- 쿠바 재이주(1921) - 멕시코 경제가 나빠지자 1921년 3월 일부 한인이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다시 떠났다. 그 수를 백과사전은 274명, 국가기록원은 290명 남짓(288명)으로 적는다.[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