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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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武寧王陵)은 충청남도 공주시 송산리 고분군(지금의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에 있는 백제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1971년 도굴되지 않은 채 발견되었으며 지석이 나와 주인을 정확히 알 수 있는 드문 삼국 시대 왕릉이다.

1971년 7월 송산리 6호분의 배수로 공사를 하다가 우연히 입구가 드러났다. 연꽃무늬 벽돌로 쌓은 방 하나짜리 벽돌무덤으로, 평면은 남북으로 긴 직사각형이고 앞쪽 가운데에 널길이 달린 凸(철) 자 모양이다. 천장은 터널처럼 둥글게 쌓았다. 벽에는 등잔을 놓는 보주 모양 감실을 두었다. 중국 남조 양의 무덤 양식을 받아들인 것으로, 이후 백제 무덤의 천장 모양에도 영향을 주었다.[1]
널길 입구에서 왕과 왕비의 지석(묘지석) 2매와 오수전 한 꾸러미가 나왔다. 왕의 지석에는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 62세 되던 계묘년(523) 5월 7일에 돌아가시고, 을사년(525) 8월 12일에 대묘에 안장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영동대장군'은 무령왕이 521년 양 무제에게서 받은 칭호이고, '사마'는 무령왕의 이름이다. 지석 뒷면에는 방위별 간지를 새겼다.[2]
- 다른 한 매에는 무덤 자리를 땅의 신에게서 돈을 주고 샀다는 매지권과 왕비의 지석이 앞뒤로 새겨져 있다.
- 사망부터 매장까지 2년 남짓 걸린 것을 두고 중국의 3년상과 관련짓는 해석이 있으며, 개월 수를 27·28·29개월 등으로 다르게 계산한다.
- 『양서』는 무령왕이 524년에 죽었다고 적었으나 지석으로 523년이 맞음이 확인되었다. 지석에 따르면 무령왕은 461~462년에 태어났다.[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출토 유물을 4,600여 점으로 적고 있다. 이 가운데 12종목 17건이 1974년 국보로 지정되었다.[1]
- 금제 관식 - 왕과 왕비의 관에 꽂았던 한 쌍씩의 금 관꾸미개로, 불꽃 모양 무늬로 오렸다.
- 석수(진묘수) - 널길에 놓인 돌짐승으로 무덤을 지키는 역할을 했다.
- 목관 - 일본에서 나는 금송으로 만들었다.
- 금귀걸이·금목걸이·은팔찌, 청동 거울, 중국제 청자 등.
이 유물들은 웅진 시기 백제가 중국 남조와 가깝게 교류하고 왜와도 활발히 오갔음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