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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보급 운동(文字普及運動, 1929~1935)은 조선일보사가 1929년부터 방학을 맞아 귀향하는 학생들을 내세워 농촌 사람들에게 한글을 가르친 문맹 퇴치 운동이다.

1920년대 조선인의 문맹률은 90%에 이를 만큼 높았고, 일제는 일본어를 '국어'라 하며 학교에서 한국어를 밀어냈다. 3.1 운동 이후 민족 운동이 침체하던 때에 언론사들은 문맹 퇴치를 새로운 민족 운동으로 삼았다. 조선일보사는 1929년 여름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는 구호를 내걸고 귀향 학생을 동원해 고향 마을에서 한글 강습을 열게 했다. 교재 인쇄 말고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방법이었다.[1][2]

  • 교재 - 『한글원본』을 만들어 1930년 9만 부, 1931년 30만 부를 나누어 주었다. '문자 보급가'를 공모해 발표하기도 했다.
  • 규모 - 첫해인 1929년에는 학생 409명이 참가했고, 1930년 900명, 1931년 1,800명이 참가해 수강생이 2만 명을 넘었다. 1932·1933년에는 중단되었다가 1934년 다시 열렸다.
  • 성과 - 학생 계몽대의 강연과 교육으로 약 1만 명이 한글을 깨쳤다는 평가가 있다. 다만 집계된 수강생 수는 참가 학생 일부의 보고만 모은 것이어서 실제 규모는 더 컸을 것으로 본다.
  • 중단 - 1935년 여름 방학부터 조선 총독부의 압력으로 학생을 동원할 수 없게 되었다. 조선일보사는 그 뒤에도 1935년 10만 부, 1936년 50만 부의 교재를 배포해 학생들이 스스로 가르치게 했다.[2]

브나로드 운동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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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주도 시기 특징
문자 보급 운동 조선일보사 1929~1935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 『한글원본』
브나로드 운동 동아일보사 1931~1934 '민중 속으로', 한글 강습에 위생·생활 개선 계몽을 더함, 심훈 『상록수』

두 운동 모두 1935년 조선 총독부의 탄압으로 멈추었다. 조선어 학회 회원들이 한글 강습에 힘을 보탰다.

  1. ↑ 문자보급운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2.0 2.1 문자보급-농촌계몽운동, 『신편 한국사』 51,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