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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혁(朴載赫, 1895~1921)은 의열단원으로 1920년 9월 부산 경찰서에 들어가 서장 하시모토에게 폭탄을 던져 숨지게 한 독립운동가이다.

부산 출신으로 부산진 보통학교와 부산 상업 학교를 졸업했다. 학생 시절 동지들과 비밀 결사 구세단을 만들어 항일 잡지를 펴내다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졸업 뒤 무역 회사에서 일하다 1917년 상하이로 건너가 무역업을 하며 중국과 싱가포르 등지를 오갔고, 이 무렵 김원봉을 만났다.[1]

부산 경찰서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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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경 - 1920년 의열단이 국내로 들여온 폭탄이 발각되어 단원들이 대거 붙잡히자, 의열단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경찰서 공격을 계획했다. 박재혁은 1920년 8월 상하이에서 의열단에 들어갔다.
  • 잠입 - 고서 꾸러미 속에 폭탄을 숨겨 일본 나가사키를 거쳐 9월 13일 부산에 돌아왔다.
  • 거사 - 이튿날인 9월 14일, 중국인 고서 상인으로 꾸미고 고서를 좋아하던 부산 경찰서장 하시모토를 찾아갔다. 진귀한 책을 보여 준다며 보따리를 풀고는 폭탄을 꺼내 던졌다. 하시모토는 중상을 입고 끝내 숨졌고, 박재혁도 크게 다쳐 붙잡혔다.[2]
  • 이 의거는 의열단이 처음으로 성공시킨 거사로 꼽힌다. 부산시의 일부 자료는 의거 날짜를 9월 4일로 적기도 하나, 백과사전과 우리역사넷은 9월 14일로 적는다.

재판에서 사형이 확정되어 대구 형무소에 갇혔다. 폭탄 상처와 고문, 폐병에 시달리던 그는 형이 집행되기 전에 단식하다가 1921년 5월 옥중에서 숨졌다. "내 뜻을 다 이루었으니 지금 죽어도 아무 한이 없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한다. 순국일은 자료에 따라 5월 11일 또는 12일로 전한다. 정부는 1962년 건국 훈장을 추서했다.

의열단의 주요 의거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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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인물 대상
1920 박재혁 부산 경찰서
1920 최수봉 밀양 경찰서
1921 김익상 조선 총독부
1923 김상옥 종로 경찰서
1926 나석주 동양 척식 주식회사·조선 식산 은행

의열단의 결성과 활동은 김원봉 문서에 정리되어 있다. 의열단의 행동 강령은 신채호가 쓴 조선 혁명 선언이다.

  1. ↑ 박재혁, 나라사랑배움터, 국가보훈부, 2026-10-19 확인.
  2. ↑ 박재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