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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봉(金元鳳, 1898~1958)은 의열단을 조직해 의열 투쟁을 이끌고, 난징에 조선 혁명 간부 학교를 세웠으며, 민족 혁명당과 조선 의용대를 거쳐 한국광복군 부사령관과 임시정부 군무부장을 지낸 독립운동가이다.

경상남도 밀양 출신으로 호는 약산이다. 개인의 폭력 투쟁에서 출발해 군사 간부 양성, 민족 연합 전선, 무장 부대 창설로 투쟁 방식을 넓혀 갔다. 광복 뒤 좌우 합작에 힘쓰다가 1948년 남북 협상에 참가한 뒤 북에 남았고, 1958년 숙청되었다.[1]

  • 결성(1919) - 1919년 만주 지린에서 신흥 무관 학교 출신 청년들과 의열단을 조직하고 단장(의백)이 되었다.
  • 투쟁 대상 - 조선 총독과 고관, 군부 수뇌, 친일파 거두 등 '칠가살'을 처단하고 조선 총독부·동양 척식 주식회사·경찰서 등 '오파괴'를 노렸다.
  • 조선 혁명 선언(1923) - 김원봉의 부탁으로 신채호가 의열단의 행동 강령인 「조선 혁명 선언」을 지었다. 민중에 의한 직접 혁명을 내세웠다.
  • 주요 의거 - 박재혁의 부산 경찰서 폭탄 투척(1920), 김익상의 조선 총독부 폭탄 투척(1921), 김상옥의 종로 경찰서 폭탄 투척(1923), 나석주의 동양 척식 주식회사·식산 은행 폭탄 투척(1926)이 있다. 의열단이 처음 성공시킨 박재혁의 의거는 박재혁 문서에 있다.

투쟁 노선의 전환

편집 원본 편집
  • 황푸 군관 학교 - 개인 의거의 한계를 느끼고 1926년 중국 황푸 군관 학교에 들어가 군사 교육을 받았다.
  • 조선 혁명 간부 학교(1932) - 중국 국민당 정부의 도움을 받아 난징에 조선 혁명 군사 정치 간부 학교를 세우고 독립군 간부를 길러 냈다. 시인 이육사도 이곳 출신이다.
  • 민족 혁명당(1935) - 의열단·한국 독립당·조선 혁명당 등 다섯 단체를 모아 민족 혁명당을 만들었다(1937년 조선 민족 혁명당으로 개칭).
  • 조선 의용대(1938) - 중국 국민당 정부의 동의를 얻어 한커우에서 조선 의용대를 창설하고 대장이 되었다. 중국 관내에서 결성된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이다. 1941년 대원 다수가 화북으로 옮겨 조선 의용군으로 이어졌다.
  • 한국광복군 합류 - 1942년 남은 조선 의용대를 이끌고 한국광복군에 합류해 부사령관 겸 제1지대장이 되었고, 1944년 임시정부 군무부장을 맡았다.
  • 귀국 - 1945년 12월 임시정부 요인으로 귀국했다. 좌우 합작을 추진했고, 좌익 연합체인 민주주의 민족 전선의 의장단에 들었다.
  • 월북 - 1948년 남북 협상에 참가한 뒤 북한에 남아 국가 검열상·노동상 등을 지냈으나 1958년 숙청되었다.

무장 독립 부대와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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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부대·인물
조선 혁명 간부 학교 설립, 중국 관내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 김원봉, 조선 의용대
청산리에서 일본군을 크게 격파 북로 군정서(김좌진)
하와이에서 박용만의 주도로 창설 대조선 국민군단
흥경성·영릉가 전투에서 승리 조선 혁명군(양세봉)
인도·미얀마 전선 활동, OSS와 국내 진공 작전 준비 한국광복군
  1. ↑ 김원봉,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