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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상(金益相, 1895~?)은 의열단 단원으로 1921년 9월 서울 남산 왜성대의 조선 총독부 청사에 폭탄을 던지고, 1922년 3월 상하이 황푸탄에서 일본 육군 대장 다나카 기이치를 저격한 독립운동가이다.

김익상(1935년 신문 사진)

1920년 일하던 곳에서 만주 봉천(선양)으로 전근된 것을 기회로 삼아, 비행사가 되려고 중국 광둥의 비행 학교를 찾아갔으나 내전으로 학교가 문을 닫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상하이에서 전차 회사 감독으로 일하다 독립운동에 몸 바치기로 하고 베이징에서 의열단에 들어갔다.[1]

조선 총독부 폭탄 투척(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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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 김원봉에게서 총독 처단 임무를 받고 국내로 들어와, 1921년 9월 12일 전기 수리공으로 꾸며 총독부 청사에 들어갔다. 2층 비서과(총독실로 잘못 알았다)와 회계과장실에 폭탄을 던졌는데, 비서과의 폭탄은 터지지 않고 회계과장실의 폭탄이 터졌다. 청사가 혼란에 빠진 틈에 빠져나와 평양을 거쳐 중국으로 무사히 돌아갔다.[1] 이 의거는 1920년 박재혁의 부산 경찰서 의거, 최수봉의 밀양 경찰서 의거에 이어 식민 통치의 심장부를 노린 것이었다.[2]

황푸탄 의거(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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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다나카 기이치가 필리핀을 거쳐 상하이에 온다는 정보를 얻은 의열단은 오성륜·김익상·이종암에게 저격을 맡겼다. 3월 28일 황푸탄 부두에서 오성륜이 먼저 총을 쐈으나 앞을 막아선 영국인 여성이 맞았고, 김익상이 던진 폭탄도 터지지 않았다. 달아나던 김익상은 중국 경찰의 추격 끝에 붙잡혔다. 일본 나가사키로 넘겨져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감형되어 1936년 출옥했으나, 귀국한 뒤 일본 형사에게 끌려가 소식이 끊겼다.[1]

의열단의 주요 의거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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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인물 대상
1920 박재혁 부산 경찰서
1921 김익상 조선 총독부
1922 오성륜·김익상·이종암 상하이 황푸탄, 다나카 기이치
1923 김상옥 종로 경찰서
1926 나석주 동양 척식 주식회사·조선 식산 은행

도쿄에서 일왕에게 폭탄을 던진 이봉창은 의열단이 아니라 한인 애국단 단원이다.

  1. ↑ 1.0 1.1 1.2 김익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1 확인.
  2. ↑ 대한의 청년들, 정의를 맹렬히 실행하다!, 전시 안내 책자, 독립기념관, 2023, 2026-10-21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