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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옥(金相玉, 1889~1923)은 의열단과 연계해 1923년 1월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서울 효제동에서 일본 군경 천여 명과 홀로 총격전을 벌이다 마지막 한 발로 자결한 독립운동가이다.

서울 사람으로, 집안이 가난해 어려서부터 대장간 등에서 일하며 야학으로 공부했다. 동흥 야학을 세우고, 동대문 밖에 영덕 철물점을 열어 일본 상품에 맞서 말총 모자를 만들어 팔았다. 3.1 운동이 일어나자 동지들과 비밀 결사 혁신단을 만들어 『혁신공보』를 펴냈고, 1920년에는 암살단을 꾸려 미국 의원단이 서울에 올 때 총독 등 고관을 처단하려 했으나 동지들이 붙잡혀 실패했다. 이후 상하이로 망명해 김구·이시영 등과 거사를 의논하고 의열단에 참여했다.[1]

종로 경찰서 의거와 효제동 총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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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탄 - 1922년 12월 서울로 들어와 1923년 1월 12일 밤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던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던졌다.
  • 삼판통 교전 - 삼판통(지금의 후암동)에 숨어 있다가 경찰에 포위되자 형사부장 다무라를 쏘아 죽이고 남산으로 빠져나갔다. 수백 명의 군경이 남산을 뒤졌으나 찾지 못했다.
  • 효제동 최후 - 승복으로 변장해 효제동에 숨었으나 1월 22일 새벽 천여 명의 군경에 포위되었다. 양손에 권총을 들고 지붕과 담을 넘나들며 세 시간 동안 맞서다 탄환이 떨어지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1][2]
  • 독립기념관 자료는 그가 1월 17일 남대문역을 지나 도쿄로 가는 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노리고 숨어 있었다고 전한다.

기록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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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판통 교전을 백과사전은 1월 17일 새벽으로 적고, 국가보훈부 공적 조서는 투탄 당일 오후로 적는다.[3]
  • 효제동 총격전이 시작된 시각을 공적 조서는 오전 5시 반, 독립기념관 자료는 오전 7시로 적는다.
  • 정부는 1962년 건국 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의열 투쟁 인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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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소속 의거
김상옥 의열단 종로 경찰서 투탄(1923)
김익상 의열단 조선 총독부 투탄(1921), 황푸탄 의거(1922)
박재혁 의열단 부산 경찰서 투탄(1920)
이봉창 한인 애국단 도쿄 일왕 투탄(1932)
윤봉길 한인 애국단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의거(1932)
  1. ↑ 1.0 1.1 김상옥,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1 확인.
  2. ↑ 대한의 청년들, 정의를 맹렬히 실행하다!, 전시 안내 책자, 독립기념관, 2023, 2026-10-21 확인.
  3. ↑ 김상옥,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2026-10-21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