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족 행위 처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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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족 행위 처벌법(反民族行爲處罰法, 1948~1951)은 제헌 헌법 제101조에 따라 1948년 9월 22일 법률 제3호로 공포된 법으로, 1945년 8월 15일 이전 일제에 협력한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자를 처벌하려고 국회에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를 두게 했다. 줄여서 반민법이라 한다.
- 국권 피탈 협력(제1조) - 일본 정부와 짜고 한일 병합에 적극 협력하거나 주권을 해치는 조약에 조인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 징역에 처하고 재산을 몰수할 수 있게 했다.
- 작위·제국 의회 의원(제2조) - 일본 정부에서 작위를 받거나 일본 제국 의회 의원이 된 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했다.
- 독립운동가 박해(제3조) -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을 악의로 죽이거나 박해한 자는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했다.
- 그 밖의 친일 행위(제4조) - 밀정, 악질적인 군·경찰 관리, 군수 공업 책임 경영자 등 12가지 유형은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공민권 정지에 처할 수 있게 했다.
- 처벌 기구 - 국회의원 10명으로 특별 조사 위원회를 두어 예비 조사를 맡기고, 대법원에 특별 재판부, 그 아래 특별 검찰부를 두었다. 재판은 단심제였다.
- 공소 시효(제29조) - 공포일로부터 2년으로 정했다.[2]
반민특위는 1949년 1월부터 박흥식·최린·이광수·최남선 등을 잡아들였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는 반공을 앞세워 반민특위 활동에 반대했고, 1949년 6월 경찰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했으며, 반민법 제정에 앞장선 소장파 의원들이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1949년 7월 국회는 공소 시효를 1949년 8월 말로 줄이는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반민특위는 그해 10월 해체되었다. 실제로 처벌받은 사람은 극소수였다. 반민법은 1951년 2월 14일 「반민족 행위 처벌법 등 폐지에 관한 법률」로 폐지되었다.[1]
| 법·기구 | 때 | 내용 |
|---|---|---|
| 좌우 합작 7원칙의 친일파 처리 조항 | 1946 | 좌우 합작 운동, 입법 기구에서 처리하자고 제안 |
| 제헌 헌법 제101조 | 1948.7 | 반민족 행위 처벌 특별법의 근거 |
| 반민족 행위 처벌법 | 1948.9 | 처벌 대상·형량, 반민특위 설치 |
|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 | 1948~1949 | 반민법에 따른 조사 기구 |
| 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 규명 위원회 | 2005~2009 | 노무현 정부 때 진상 조사 |
- ↑ 1.0 1.1 반민족행위처벌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1 확인.
- ↑ 반민족행위처벌법(법률 제3호, 1948. 9. 22. 제정), 국가법령정보센터, 법제처, 2026-10-21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