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산 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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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상회(白山商會)는 독립운동가 안희제가 1914년 무렵 부산에 세운 무역 상회로, 겉으로는 곡물·면포·해산물을 거래하면서 실제로는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의 연락과 독립운동 자금 조달을 맡았으며, 1919년 백산 무역 주식회사로 커졌다.
안희제(安熙濟, 1885~1943)는 경상남도 의령 사람으로, 대한 제국 말 교육 운동을 하다가 국권이 넘어가자 만주와 러시아를 떠돌며 독립운동 기지를 둘러보았다. 1914년 부산에 돌아와 이유석·추한식 등과 함께 백산 상회를 열었다. 일반 상점처럼 보이게 꾸민 것은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였다.[1]
- 회사 확대 - 1917년 합자 회사로 바꾸었고, 1919년 영남 지역 지주와 자본가를 끌어들여 자본금 100만 원의 백산 무역 주식회사로 키웠다. 경주의 부호 최준이 사장을 맡았고, 경성·대구·원산과 만주의 안동·봉천 등에 지점과 연락 사무소를 두었다.
- 독립운동 자금 - 3·1 운동 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사람과 자금을 보냈고, 임시정부의 연통제를 통한 연락과 『독립신문』 보급도 도왔다. 회사는 늘 적자였는데, 경영이 부실해서가 아니라 번 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 인재 양성 - 1919년 11월 안희제는 백산 상회의 윤병호 등과 기미 육영회를 만들어 청년들의 해외 유학을 도왔다.[2]
- 해산 - 일본 경찰의 계속된 수색과 장부 검열, 경영난과 내부 분규 끝에 문을 닫았다.
- 주식회사로 바뀐 때를 백과사전은 1919년 5월, 우리역사넷은 1919년 1월 14일 설립 인가로 적는다.
- 해산 연도를 백과사전은 1927년, 우리역사넷은 1928년으로 적는다.
- 설립 연도도 1914년 9월설과 1916년 무렵설이 함께 전한다.
안희제는 1929년 『중외일보』 사장을 맡아 언론 활동을 했고, 1930년대에는 만주에 발해 농장을 세워 이주 동포의 자립 농촌을 꾸렸다. 대종교 신자로서 1942년 대종교 지도자들이 일제히 붙잡힐 때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고, 이듬해 병보석으로 풀려난 직후 숨졌다. 부산 중구에는 그를 기리는 백산 기념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