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산 장려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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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산 장려 운동(物産奬勵運動)은 1920년대 일본 상품의 유입에 맞서 우리 손으로 만든 토산품을 쓰고 민족 기업을 키워 경제적 자립을 이루자고 벌인 민족 경제 운동이다.
- 구호 - '내 살림 내 것으로', '조선 사람 조선 것'을 내걸고 토산품 애용·소비 절약·금주 단연을 권했다.
- 자작회 - 1922년 서울에서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단체. 진주·무안·의령 등지에도 지회가 생겨 토산품 판매와 강연을 했다.[2]
- 토산 애용 부인회 - 1923년 서울에서 여성들이 조직해 토산품 애용을 호소하고 토산 애용 부인 상회를 열었다.
- 기관지 - 조선 물산 장려회는 『산업계』·『자활』 등을 펴냈다.
- 민족 기업의 광고 - 경성 방직 같은 한국인 기업은 '조선 사람의 자본과 기술로 된 광목'을 내세워 운동의 분위기를 상품 광고에 활용했다.
토산품 수요가 갑자기 늘자 물건값이 크게 올라 상인과 기업가만 이익을 보고 서민은 손해를 보았다. 사회주의자들은 이 운동이 결국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운동은 점차 힘을 잃었고, 조선 물산 장려회는 1937년 총독부 명령으로 해산되었다.
| 사실 | 운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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