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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산 장려 운동(物産奬勵運動)은 1920년대 일본 상품의 유입에 맞서 우리 손으로 만든 토산품을 쓰고 민족 기업을 키워 경제적 자립을 이루자고 벌인 민족 경제 운동이다.

1920년 조선 총독부가 회사령을 철폐해 일본 자본이 자유롭게 들어오게 되었고, 1923년에는 일본과 조선 사이의 관세를 대부분 없애기로 하면서 값싼 일본 상품이 쏟아져 들어올 것이 예상되었다. 이에 민족 자본가와 지식인들은 3.1 운동 뒤의 실력 양성 운동의 하나로 국산품 애용을 내걸었다. 1920년 평양에서 조만식 등이 조선 물산 장려회를 처음 만들었고, 1923년 1월 서울에서 조선 물산 장려회가 조직되면서 운동이 전국으로 번졌다.[1]

  • 구호 - '내 살림 내 것으로', '조선 사람 조선 것'을 내걸고 토산품 애용·소비 절약·금주 단연을 권했다.
  • 자작회 - 1922년 서울에서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단체. 진주·무안·의령 등지에도 지회가 생겨 토산품 판매와 강연을 했다.[2]
  • 토산 애용 부인회 - 1923년 서울에서 여성들이 조직해 토산품 애용을 호소하고 토산 애용 부인 상회를 열었다.
  • 기관지 - 조선 물산 장려회는 『산업계』·『자활』 등을 펴냈다.
  • 민족 기업의 광고 - 경성 방직 같은 한국인 기업은 '조선 사람의 자본과 기술로 된 광목'을 내세워 운동의 분위기를 상품 광고에 활용했다.

토산품 수요가 갑자기 늘자 물건값이 크게 올라 상인과 기업가만 이익을 보고 서민은 손해를 보았다. 사회주의자들은 이 운동이 결국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운동은 점차 힘을 잃었고, 조선 물산 장려회는 1937년 총독부 명령으로 해산되었다.

1920년대 실력 양성 운동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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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운동
자작회·토산 애용 부인회가 참여, '내 살림 내 것으로' 물산 장려 운동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 '한민족 1천만이 한 사람 1원씩' 민립 대학 설립 운동
백정 차별 철폐, 조선 형평사 형평 운동
대구에서 시작해 담배를 끊어 나랏빚을 갚자고 함 국채 보상 운동(1907, 대한 제국 시기)
  1. ↑ 조선물산장려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자작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