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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의』(北學議)는 박제가가 1778년 청에 다녀온 뒤 청의 발달한 문물과 제도를 배워 수레·배 이용, 상공업 진흥, 적절한 소비를 통한 생산 자극 등을 주장한 조선 후기의 개혁서이다.

박제가는 1778년(정조 2) 사은사 채제공을 따라 이덕무와 함께 청의 연경(베이징)에 다녀온 뒤 이 책을 지었다. 병자호란 이후 청을 오랑캐로 낮추어 보던 분위기 속에서, 청을 앞선 나라로 인정하고 그 문물을 배우자는 주장을 과감하게 폈다. '북학'은 북쪽(청)의 앞선 학문과 문물을 배운다는 뜻이며, 북학파라는 이름이 이 책에서 나왔다.[1]

  • 내편 - 수레·배·성·벽돌·기와·도로·다리·목축·시장·상업·화폐 등 생활에 필요한 기구와 시설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항목별로 다루었다.
  • 외편 - 농업·과거·관리·녹봉·재정·강남과 저장성 상선과의 통상 등 제도와 정책의 개혁안을 논설로 실었다.
  • 소비론 - 재물은 우물과 같아서 퍼 쓰면 차고 내버려 두면 마른다고 비유했다. 사치를 금하는 것만 강조하던 다른 학자들과 달리, 적절한 소비가 생산을 자극한다고 보았다.
  • 상공업과 통상 - 수레를 쓰고 배로 물자를 나르며 청과 바닷길로 통상하자고 했다. 놀고먹는 양반에게 장사를 시키자는 주장도 폈다.
  • 고본(稿本) - 박제가가 직접 원고를 쓰고 엮은 2편 2책의 필사본이 수원화성박물관에 있다. 스승 박지원이 직접 쓴 서문이 함께 남아 있어 두 사람의 친필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2025년 9월 4일 보물로 지정되었다.[2]
  • 진소본(進疏本) - 1798년(정조 22) 영평 현령으로 있던 박제가가 농서를 구하는 정조의 요청에 응해, 내외편의 3분의 1쯤을 간추리고 고쳐 상소와 함께 올린 것이다.
  • 간행 - 오랫동안 필사본으로만 전하다가 광복 뒤 진소본의 번역이 나왔고, 1962년 국사편찬위원회가 박제가의 문집과 함께 간행했다. 백과사전의 정의는 1778년에 '간행'했다고 적지만 본문은 광복 전에는 간행되지 않았다고 해, 1778년은 저술 시점으로 보는 것이 맞다.[1]

비슷한 시기의 저술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책 지은이 내용
『북학의』 박제가 청 문물 수용, 수레·배 이용, 소비 촉진
『열하일기』 박지원 1780년 청 연행 견문, 「허생전」·「호질」 수록
『의산문답』 홍대용 지전설·무한 우주론
『발해고』 유득공 남북국이라는 말을 처음 씀 (→ 발해고)
『목민심서』 정약용 지방관의 도리와 실무
  1. ↑ 1.0 1.1 북학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2. ↑ 보물 박제가 고본 북학의,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