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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문장가로, 청 여행기 『열하일기』와 「양반전」·「허생전」 등의 한문 소설을 지어 청 문물 수용과 상공업 진흥을 주장한 북학파의 중심 인물이다.

호는 연암(燕巖), 본관은 반남이다. 젊어서 과거에 한 번 실패한 뒤 벼슬을 멀리하고 학문과 글쓰기에 몰두했다. 1768년 무렵 서울 백탑 근처로 이사해 박제가·이덕무·유득공·이서구 등과 이웃하며 어울렸고, 홍대용과 이용후생에 대해 자주 토론했다. 이 모임을 백탑파라고도 한다. 홍국영이 권세를 잡자 황해도 금천의 연암협으로 피해 살았는데, 호 '연암'이 여기서 나왔다.[1]

뒤늦게 음서로 벼슬길에 나아가 안의 현감, 면천 군수, 양양 부사를 지냈다. 손자 박규수는 개화 사상의 선구자가 되었다.

『열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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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정조 4) 삼종형 박명원이 청 건륭제의 70세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로 갈 때 따라가 북경과 황제의 여름 별궁이 있는 열하를 다녀왔다. 이때 보고 들은 것을 정리한 책이 『열하일기』이다.[2]

  • 청을 오랑캐라 배척하던 분위기 속에서, 청의 앞선 문물이라도 백성의 삶을 넉넉하게 한다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 수레와 선박의 이용, 화폐 유통, 벽돌 사용 등 생활 기술의 개선을 강조했다.
  • 자유롭고 사실적인 문체 때문에 비판을 받았고, 정조가 문체반정을 벌일 때 대표적인 예로 지목되었다.

한문 소설과 경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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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반전」 - 양반 신분을 사고파는 이야기로 양반의 허례와 무능을 풍자했다.
  • 「허생전」 - 『열하일기』에 실린 작품으로, 매점매석으로 큰돈을 버는 허생을 통해 상업의 힘을 보여 주고 허울뿐인 북벌론을 비판했다.
  • 「호질」 - 호랑이의 꾸짖음을 빌려 위선적인 선비를 풍자했다.
  • 『과농소초』·『한민명전의』 - 면천 군수 시절 정조에게 올린 농서이다. 『한민명전의』에서 토지 소유의 상한을 정하자는 한전론을 제시했다.
  • 법고창신 - 옛 글을 본받되 새롭게 창조해야 한다는 문학관을 내세웠다.

북학파 학자들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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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저술 인물
「양반전」·「허생전」·「호질」, 『열하일기』, 한전론 박지원
『의산문답』에서 지전설·무한 우주론 주장 홍대용
『북학의』에서 소비 촉진을 통한 생산 증대 주장, 규장각 검서관 박제가
『지구전요』·『기측체의』 저술 최한기
토지를 마을 단위로 함께 경작하는 여전론 정약용
  1. ↑ 박지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열하일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