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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洪大容, 1731~1783)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청에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의산문답』에서 지전설과 무한 우주론을 펼친 북학파의 선구자이다.

호는 담헌(湛軒), 본관은 남양이다. 노론 학자 김원행에게 배웠으나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천문·수학·음악 등 실용 학문을 깊이 공부했다. 1765년 숙부 홍억이 서장관으로 청에 갈 때 자제군관으로 따라가 이듬해 초까지 북경에 머물렀다. 이 연행은 그의 학문을 크게 바꾸었고, 박지원·박제가 등 뒤이은 북학파 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뒤에 세손 시절의 정조를 가르치는 세손익위사 시직을 지냈고, 태인 현감·영천 군수를 역임했다. 저술은 문집 『담헌서』로 정리되어 전한다.[1]

  • 항저우 선비들과의 교유 - 북경 건정동에서 엄성·반정균·육비를 만나 필담을 나누고 의형제를 맺었다. 귀국 뒤에도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이 필담과 편지는 「건정동필담」·「항전척독」으로 남았다.
  • 서양 선교사와의 대화 - 북경의 천주당을 찾아가 독일인 선교사 할러슈타인(유송령)·고가이슬(포우관)과 천주교와 천문학에 대해 문답했다. 이 내용은 「유포문답」에 실렸다.
  • 연행 기록 - 한문 기록 『담헌연기』와 함께, 한글로 쓴 견문록 『을병연행록』을 남겼다. 을유년(1765)과 병술년(1766)에 걸친 여행이라 이렇게 부른다.
  • 『의산문답』 - 조선의 학자 허자와 의무려산에 숨어 사는 실옹이 대화하는 형식의 글이다. 지구가 하루에 한 번 돈다는 지전설, 우주는 끝이 없다는 무한 우주론을 주장했다. 사람과 만물에 귀천이 없고, 땅이 둥글어 어느 곳도 중심이 아니라며 중국 중심의 화이관을 비판했다.[2]
  • 「임하경륜」 - 8세 이상의 모든 아이를 신분에 관계없이 교육하고, 재능에 따라 일을 맡기자는 개혁안이다. 놀고먹는 양반을 비판하고 모든 사람이 일해야 한다고 했다.
  • 『주해수용』 - 산학과 천문 계산을 정리한 수학서이다.
  • 혼천의 제작 - 나경적 등과 함께 혼천의를 만들고, 고향 집에 사설 관측소 농수각을 지어 두었다.

북학파 학자들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활동·저술 인물
『의산문답』에서 지전설·무한 우주론 주장, 『을병연행록』 홍대용
「양반전」·「허생전」으로 양반 풍자, 『열하일기』 박지원
『북학의』에서 소비를 통한 생산 자극(우물론) 주장 박제가
『지구전요』로 세계 지리 소개, 『기측체의』 최한기
『고금석림』을 편찬해 우리말과 외국어 어휘 정리 이의봉
  1. ↑ 담헌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의산문답,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