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리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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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리 제도(上守吏 制度)는 통일 신라가 지방 주(州)의 향리를 일정 기간 수도 금성(경주)에 올라와 머물며 여러 관청에서 일하게 한 제도로, 지방 세력을 통제하는 구실을 했으며 고려의 기인 제도로 이어졌다.
신라는 삼국 통일 뒤 넓어진 영토를 다스리려고 685년(신문왕 5) 9주 5소경을 갖추었다. 이 무렵 주의 장관인 도독 아래에서 실무를 맡던 주리(州吏)를 돌아가며 왕경에 올려 보내 중앙 관청에서 근무하게 하는 방식이 정비된 것으로 본다. 서울에 올라와 지키는 일을 '상수(上守)', 그 사람을 '상수리'라 했다. 지방 유력자를 볼모처럼 곁에 두면서 지방 사정을 파악하는 효과가 있었다.[1]
제도의 모습은 『삼국유사』의 거득공 이야기에 남아 있다. 문무왕의 아우 거득공이 신분을 숨기고 지방을 돌아볼 때 무진주(지금의 광주)의 향리 안길이 그를 극진히 대접했다. 『삼국유사』는 "나라의 제도에 해마다 지방 주의 향리 한 사람을 서울의 여러 관청에 올려 보내 지키게 했다"고 설명하고, 이것이 지금(고려)의 기인이라고 덧붙였다. 안길은 상수할 차례가 되어 서울에 올라와 거득공을 다시 만나 후한 대접을 받았다.[2]
『삼국유사』는 이 일을 문무왕 때의 이야기로 전하는데, 9주가 완성된 것은 그 뒤인 신문왕 때이다. 백과사전은 안길이 무진주의 향리라기보다 무진군을 대표하는 촌주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문무왕 때 군의 촌주를 올려 보내던 방식이 9주 정비 뒤 주리를 올려 보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한다.[1]
| 제도 | 시대 | 내용 |
|---|---|---|
| 상수리 제도 | 통일 신라 | 지방 향리 본인이 서울에 올라와 관청에서 근무 |
| 기인 제도 | 고려 | 향리의 자제를 개경에 머물게 해 볼모로 삼고 출신지 일의 자문을 맡김 |
| 사심관 제도 | 고려 | 중앙 고관에게 출신 지역을 맡겨 책임지게 함(→ 사심관) |
| 경재소 | 조선 전기 | 서울의 관리가 출신 지역 유향소를 통제 |
- 국경 지역인 양계에 병마사를 보낸 것은 고려의 지방 제도이다(→ 고려의 지방 행정 제도).
- 주자감은 발해의 국립 교육 기관이다(→ 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