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지방 행정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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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지방 행정 제도는 전국을 일반 행정 구역인 5도와 군사 행정 구역인 양계(동계·북계)로 나누고, 그 아래 주·군·현과 향·부곡·소를 둔 고려 시대의 지방 통치 체제이다.
고려 초에는 지방 호족이 자기 고을을 사실상 다스렸고, 중앙은 조세를 거둘 때만 금유·조장 같은 임시 관리를 보냈다. 태조는 사심관 제도와 기인 제도로 호족을 간접 통제했다(→ 고려 태조). 983년 성종이 12목에 처음 지방관을 보냈고, 995년에는 10도와 12주 절도사를 두었다. 이어 현종이 1018년 무렵 4도호부·8목을 중심으로 제도를 다시 짜면서 5도 양계의 골격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속현이 지방관이 있는 주현보다 훨씬 많았고, 실제 행정은 그 고을의 향리가 맡았다. 이 때문에 고려의 지방 제도는 중앙 집권이 아직 덜 이루어진 체제로 평가된다.[1]
- 경기 - 수도 개경 둘레의 고을을 따로 묶어 중앙에서 직접 다스렸다.
- 5도 - 양광도·경상도·전라도·교주도·서해도. 일반 행정 구역으로, 도마다 안찰사를 보냈다. 안찰사는 6개월 정도 머물며 고을을 돌아보는 순찰관이어서 상설 관청을 두지 않았다. 도 아래에 주·군·현이 있었다.
- 양계 - 북쪽 국경 지대의 동계와 북계. 거란·여진에 맞서는 군사 행정 구역으로 병마사를 두고, 국방 요충지에 군사 기지인 진을 설치했다. 주진군이 상주했다(→ 고려의 군사 제도).
- 3경 - 개경과 서경(평양), 동경(경주)을 두었다. 문종 때 남경(지금의 서울)을 두었고, 뒤에는 동경 대신 남경을 3경으로 꼽기도 했다.
- 도호부·목 - 군사적 요충지에 도호부, 지방의 큰 고을에 목을 두었다.
- 주현 - 지방관(수령)이 파견된 고을. 주변의 속현을 함께 관할했다.
- 속현 - 지방관이 없는 고을. 주현의 지방관이 간접으로 다스리고, 실무는 그 고을 향리가 맡았다.
- 감무 - 1106년(예종 1)부터 속현에 감무라는 작은 고을의 지방관을 보내 주현으로 높이기 시작했다(→ 예종). 속현은 조선 초에 크게 줄었다가 17세기 무렵 모두 없어졌다.
- 향리 - 호장·부호장을 우두머리로 조세·공물 징수와 노동력 징발 등 실제 행정을 맡았다. 지방관보다 오히려 지역에 대한 영향력이 컸고, 상층 향리는 과거를 거쳐 중앙 관리로 나아가기도 했다.
일반 군현과 달리 차별을 받은 특수 행정 구역이다.[2]
- 향·부곡 - 주로 농업에 종사했다. 신라 때부터 있었다.
- 소 - 금·은·구리·철·종이·먹·자기 등 수공업품과 광산물을 만들어 나라에 바쳤다. 고려 때 생겼다.
- 차별 - 법적으로는 양인이었으나 일반 군현민보다 많은 세금과 역을 졌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 살 수 없었다. 국학 입학과 승려가 되는 것이 금지되었다.
- 소멸 - 1176년 공주 명학소에서 망이·망소이가 봉기하자 나라가 명학소를 충순현으로 높여 달랜 일이 있었다(→ 무신 집권기의 민란). 고려 후기부터 점차 일반 군현으로 바뀌어 조선 전기에 거의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