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메뉴 여닫기
환경 설정 메뉴 여닫기
개인 메뉴 여닫기
로그인하지 않음
지금 편집한다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될 수 있습니다.

화폐 정리 사업(貨幣整理事業)은 1905년 일본인 재정 고문 메가타 다네타로가 주도해 대한 제국의 백동화와 상평통보를 거둬들이고 일본 다이이치 은행(제일 은행)권을 본위 화폐로 삼은 화폐 개혁으로, 대한 제국의 화폐 주권을 일본에 넘기는 결과를 낳았다.

개항 뒤 대한 제국에서는 상평통보와 전환국에서 남발한 악화 백동화가 함께 쓰여 물가가 오르고 거래가 불안했다. 러일 전쟁 중인 1904년 8월 제1차 한일 협약으로 재정 고문이 된 메가타는 화폐 정리부터 재정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1904년 11월 전환국을 없애고, 1905년 1월 금 본위 화폐 제도를 규정한 화폐 조례를 6월부터 시행한다고 공포했다. 구 백동화 교환은 1905년 7월 1일 시작되었다.[1]

  • 금 본위제 채택 - 화폐 가치를 금에 두고, 한국 화폐의 기초를 일본 화폐와 같게 했다.
  • 일본 화폐 통용 - 일본 화폐를 국내에서 자유롭게 쓰게 했다.
  • 다이이치 은행 위탁 - 화폐 정리 사무를 일본 다이이치 은행에 맡기고, 정리 자금 300만 환을 이 은행에서 빌렸다. 다이이치 은행권이 사실상 본위 화폐가 되었다.
  • 백동화 등급 교환 - 백동화를 품질에 따라 갑·을·병으로 나누어, 갑종은 제값, 을종은 낮은 값으로 바꿔 주고 질이 나쁜 병종은 교환해 주지 않았다.
  • 상평통보 회수 - 엽전은 일정 기간 뒤 한도를 정해 거둬들였다.
  • 국내 상인의 몰락 - 교환 정보를 미리 얻지 못하고 가진 백동화의 상당수가 병종으로 판정된 한국인 상인·은행이 큰 손실을 입었다. 시중의 돈이 말라 전황이 생기고 문을 닫는 상점과 은행이 잇따랐다.
  • 일본 금융 지배 - 일본 은행이 한국의 화폐 발행과 금융을 장악했다.
  • 차관 증가 - 화폐 정리와 시설 개선을 명목으로 일본에서 빌린 돈이 쌓여, 1907년 나랏빚을 갚자는 국채 보상 운동이 일어났다.

다른 경제 조치와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조치 시기 주도 내용
전환국 설치 1883 조선 정부 근대 화폐를 찍는 조폐 기관, 뒤에 백동화를 남발
양전·지계 발급 1898~1904 대한 제국 (광무개혁) 토지 소유권 증명서 발급
화폐 정리 사업 1905 재정 고문 메가타 백동화 정리, 다이이치 은행권 본위
국채 보상 운동 1907 대구에서 시작한 민간 운동 일본 차관 1,300만 원 갚기
토지 조사 사업 1910~1918 조선 총독부 기한부 신고제, 총독부 토지 확대
  1. ↑ 화폐정리사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