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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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사설(星湖僿說)은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이 40세 무렵부터 읽고 생각한 것을 적어 둔 글을 천지문·만물문·인사문·경사문·시문문 다섯 부문 3,007항목으로 묶은 백과사전식 저술이다.
'사설'은 자질구레한 이야기라는 뜻의 겸사이다. 이익이 그때그때 적어 둔 글과 제자들의 물음에 답한 글을 그가 80세 무렵 집안 조카들이 정리했다. 제자 안정복은 이를 다시 골라 엮어 1,332편의 『성호사설유선』을 만들었다. 조선 시대에는 필사본으로만 전하다가 1915년 『성호사설유선』이 처음 활자로 찍혔고, 1967년 30책 원본이 영인되었다.[1]
- 천지문(223항목) - 해·달·별, 바람·비, 조수, 역법, 산맥과 옛 나라의 강역.
- 만물문(368항목) - 옷·음식·농업·가축·화폐·도량형·무기와 서양 기기.
- 인사문(990항목) - 정치·제도·경제·학문·인물. 비변사를 없애고 의정부에 정무를 돌리자는 주장, 서얼 차별 폐지, 과거 제도 개선, 토지 소유 제한, 환곡 폐지와 상평창 부활, 노비 제도 개혁 등이 실렸다.
- 경사문(1,048항목) - 경전과 역사서를 읽으며 붙인 해석. 도덕적 평가보다 시세를 먼저 보아야 한다는 역사관이 드러난다.
- 시문문(378항목) - 중국과 우리나라 시문에 대한 평.[1]
- 육두(六蠹) - 인사문에 실린 글로, 나라를 망치는 여섯 가지 좀으로 노비, 과거, 벌열(양반 문벌), 기교(사치품과 무당·광대 같은 재주), 승니(승려), 유타(게으름)를 들었다. 장사는 물자를 통하게 하는 이로움이 있다며 넣지 않았다.[2]
- 세계 인식 - 지구가 둥글다는 인식, 서양 기술이 정교하다는 평가, 단군·기자 조선의 강역이 요서까지 미쳤다는 주장, 과거에서 우리 역사를 시험하자는 제안 등이 담겼다.[1]
이수광의 『지봉유설』과 함께 조선 후기 유서(類書)의 대표작으로 꼽히지만, 현실 개혁 의식은 『성호사설』이 더 강하다고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