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요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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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요호 사건(雲揚號事件, 1875)은 1875년 일본 군함 운요호가 강화도 앞바다에 불법으로 들어와 조선 수비대와 포격전을 벌이고 영종진을 공격한 사건으로, 이듬해 강화도 조약을 강요하는 구실이 되었다.
메이지 유신 뒤 일본은 조선과 새 국교를 맺으려 했으나 서계 문제로 교섭이 막혀 있었다. 1873년 흥선 대원군이 물러나자 일본은 무력시위로 개항을 끌어내자는 포함 외교로 기울었고, 1875년 봄 해로 측량을 구실로 운요호 등 군함을 조선 연해에 보내 남해안과 동해안을 돌며 위협했다. 운요호는 양력 9월 20일(음력 8월 21일) 강화도 남쪽 난지도 앞에 닻을 내리고, 물을 구한다는 핑계로 보트를 내려 초지진 쪽으로 다가왔다. 조선 수비병이 포격하자 운요호는 초지진에 보복 포격을 퍼부었고, 이어 영종진을 공격해 상륙했다. 낡은 무기를 가진 조선군은 패해 흩어졌고, 일본군은 대포와 화승총을 빼앗고 진을 불태웠다.[1] 『고종실록』에는 운양호가 난지도에 정박했다는 보고와, 이양선의 포격으로 영종진의 관청과 민가가 불타고 첨사가 진을 버리고 물러났다는 경기 감사의 보고가 실려 있다.[2]
- 조약 강요 - 일본은 조선의 포격을 문제 삼아 이듬해 군함을 이끌고 와 1876년 2월 강화도에서 조일 수호 조규(강화도 조약)를 맺게 했다.
- 성격 - 외국 배의 출입을 금한 강화 해협에 허가 없이 들어와 탐측한 것이므로, 조선의 포격은 정당한 방어였고 사건 자체가 일본이 의도한 도발이었다고 본다.
- 조선 정부 - 사건 뒤 인천을 방어영으로 올리고 영종진을 그 아래에 두어 해안 방비를 고쳤다.
- ↑ 운요호사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 ↑ 영종에 정박한 이양선이 포를 쏘아 관청과 민가가 불타고 군사들이 죽거나 다치다, 『고종실록』 12권, 고종 12년 8월 25일,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