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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李浣, 1602~1674)은 조선 효종·현종 때의 무신으로, 어영대장과 훈련대장을 맡아 효종의 북벌 계획에 따른 군비 확충을 이끌었고 뒤에 우의정에 올랐다.

인조 때 무공을 세운 이수일의 아들로, 일찍부터 군사를 잘 다룬다는 이름이 있었다.[1] 1636년 병자호란 때 도원수 김자점의 별장으로 정방산성을 지키며 적을 동선령으로 끌어들여 복병으로 크게 무찔렀다. 1640년 청의 요구로 명을 치는 수군에 임경업의 부장으로 나섰으나 이 사실을 명 장수에게 알려 서로 피해 없이 싸웠다고 하며, 이 일로 청의 지탄을 받아 한동안 벼슬에 나가지 못했다.[2]

  • 어영대장 - 효종은 즉위 뒤 그를 북벌의 선봉 부대인 어영청의 대장으로 삼았다. 이완은 어영군이 교대로 숙위하는 제도와 군사를 뒷받침하는 보인 제도를 갖추어 어영청을 정식 군영으로 만들고, 강화도 방비에 힘썼다.
  • 훈련대장 - 1653년 그때까지 왕실 친척이나 공신만 맡던 훈련대장이 되어, 현종 때까지 16년 가까이 다른 벼슬을 하면서도 훈련대장을 겸했다. 『현종실록』은 공신·외척이 아닌 사람을 훈련대장에 쓴 것이 이완에서 비롯되었다고 적는다.
  • 북벌 준비 - 신무기 제조, 성곽 수리와 신축 등 전쟁 대책을 마련했다.[2]
  • 신중론 - 졸기에 따르면 효종이 송시열과 세운 계획을 송시열을 보내 알리자 이완은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고, 효종이 언짢아했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1]

한성 판윤·공조 판서·형조 판서를 지냈고, 병조 판서는 세 번이나 사양했다. 현종 말에 우의정이 되었으나 곧 1674년 죽었다. 죽기 전 군역 부담을 덜어 주자는 상소를 남겼다.

북벌과 관련된 인물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인물 역할
효종 북벌을 국가 계획으로 추진한 왕
송시열 산림의 대표, 「기축봉사」에서 북벌의 명분을 말함
이완 어영대장·훈련대장으로 군비 확충
신류 나선 정벌(1658) 때 조총군을 이끈 장수
  1. ↑ 1.0 1.1 『현종실록』 권22, 현종 15년(1674) 6월 14일 「우의정 이완의 졸기」, 한국고전종합DB, 2026-10-28 확인.
  2. ↑ 2.0 2.1 이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