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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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벌론(北伐論)은 병자호란 뒤 조선에서 중원을 차지한 청을 쳐서 삼전도의 치욕을 씻고 명 중심의 질서를 되살리자고 한 주장으로, 효종 때 송시열·이완 등을 중심으로 나라 차원의 군비 확충 계획으로 추진되었다.
- 주도 세력 - 청에 인질로 다녀온 효종이 즉위(1649)하자 북벌을 국가 계획으로 삼았다. 원두표·이완 같은 무신 측근을 중용하고, 김상헌·송시열·송준길 등 산림 세력을 불러들였다.
- 군비 확충 - 어영청을 크게 늘리고 대포 부대를 두었으며, 수어청을 고쳐 남한산성 방어를 보강하고, 금군을 정비했다. 강화도 해안에는 진과 보를 쌓았다. 다만 이 조치들은 대부분 중앙군 강화와 방어에 치우쳐 있었다.
- 송시열의 입장 - 송시열은 1649년 「기축봉사」에서 북벌의 당위를 말하면서도, 형세를 살펴 서서히 준비하고 먼저 민생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했다.[1]
- 반대와 한계 - 잇따른 흉년과 백성의 부담, 문신과 무신의 갈등, 김육 등 실무 관료의 반대가 겹쳤다. 청은 조선의 사정을 꿰뚫고 있었고, 조선은 오히려 청의 요청으로 두 차례 나선 정벌(1654·1658)에 조총군을 보내야 했다. 『현종실록』의 이완 졸기는 효종이 송시열과 세운 계획을 송시열을 보내 이완에게 알리자 이완이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고 전한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