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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李韓烈, 1966~1987)은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학생으로, 1987년 6월 9일 교문 앞 시위 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쓰러진 뒤 7월 5일 숨졌으며, 그의 피격은 6월 민주 항쟁을 전국으로 확산시킨 계기가 되었다.

광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연세대 경영학과에 들어갔다.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 드러나고 4월 전두환 정부가 개헌 논의를 막는 4·13 호헌 조치를 발표하자, 재야와 야당은 6월 10일 '박종철 군 고문 살인 은폐 조작 규탄 및 민주 헌법 쟁취 국민 대회'를 열기로 했다.[1]

국민 대회 전날인 6월 9일 연세대에서 '6·10 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 대회'가 열렸다. 학생들이 교문 밖으로 나가려다 경찰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이한열은 연세대 정문 앞에서 경찰이 쏜 SY-44 직격 최루탄에 뒷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사건이 전국에 알려지며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6월 12일 범연세인 규탄 대회가 비폭력 평화 시위로 열렸고, 6월 18일에는 '최루탄 추방 국민 대행진'이 전국에서 벌어졌다.[1]

이한열은 세브란스 병원에서 27일 동안 투병하다가 7월 5일 새벽 숨졌다.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주치의의 부검 메모에는 머릿속에서 나온 이물질의 분석과 함께 직접 사인이 '최루탄 피격'으로 적혀 있다.[2] 7월 9일 '민주 국민장'으로 치러진 장례에는 서울 시청 앞에 수많은 시민이 모였고, 유해는 광주 망월동 묘역에 묻혔다. 2005년 서울 신촌에 이한열 기념관이 문을 열었다.[1]

6월 민주 항쟁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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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피격은 6월 10일 국민 대회 이후의 시위를 전국으로 넓혀 항쟁을 정점으로 끌어올린 동력이 되었다. 결국 6월 29일 민정당 대표 노태우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이는 6·29 선언을 발표했고,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 헌법이 만들어졌다(→ 대한민국 헌법 개정).

민주화 운동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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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때 결과
4.19 혁명 1960 이승만 대통령 하야
6.3 시위 1964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 비상계엄
부마 민주 항쟁 1979 유신 체제 붕괴의 배경
5.18 민주화운동 1980 시민군 조직, 계엄군에 진압
6월 민주 항쟁 (박종철·이한열) 1987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 개헌
  1. ↑ 1.0 1.1 1.2 이한열 최루탄 피격사건, 오픈아카이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26-10-19 확인.
  2. ↑ 국가기록원 소식지 제114호, 국가기록원,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