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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진회(一進會, 1904~1910)는 러일 전쟁 중 송병준과 이용구가 만든 친일 단체로, 을사늑약 지지와 고종 퇴위 압박, 의병 탄압에 앞장섰고 1909년 한일 합방을 청원했다.

1904년 일본에서 돌아온 송병준은 독립 협회 출신 윤시병 등과 유신회를 만들었다가 일진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같은 해 12월에는 동학 계열 이용구의 진보회를 흡수해 전국 조직을 갖추었다. 처음에는 문명개화를 내세웠으나 러일 전쟁을 계기로 일본군과 일본 우익 정치인의 후원을 받으며 일본의 침략에 협력하는 단체로 바뀌었다. 기관지로 『국민신보』를 냈다.[1]

  • 러일 전쟁 협력 - 회원을 동원해 일본군의 군수 물자 수송과 경의선 철도 공사를 도왔다.
  • 외교권 위임 지지(1905) - 을사늑약 직전 외교권을 일본에 넘기자는 「일진회 선언서」를 발표했다.
  • 고종 퇴위 압박(1907) - 헤이그 특사 사건 뒤 고종의 양위를 요구했다.
  • 의병 탄압 - 고종 퇴위와 군대 해산 뒤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자위단을 조직해 일본군과 함께 의병을 공격했다(항일 의병 운동).
  • 합방 청원(1909.12) - 회장 이용구가 100만 회원의 이름으로 순종·내각·통감부에 「정합방 상소문」(합방 청원서)을 냈다. 탈퇴자가 속출하고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과 각계의 규탄을 받았다.
  • 해체(1910.9) - 국권 피탈 직후 통감 데라우치의 명령으로 해산되었다. 일제는 병합 뒤 일진회도 쓸모없다고 본 것이다.
  • 송병준 - 일진회 창립자. 정미 7조약 때 농상공부 대신으로 고종 퇴위에 앞장섰다.
  • 이용구 - 진보회를 이끈 동학 출신. 일진회 회장으로 합방 청원을 주도했다.

같은 시기 단체와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단체 연도 성격
일진회 1904 친일 단체, 합방 청원
보안회 1904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 반대
헌정 연구회 1905 입헌 정치 연구, 일진회 비판
대한 자강회 1906 교육·산업 진흥, 고종 퇴위 반대 운동으로 해산
신민회 1907 비밀 결사, 공화정 지향, 105인 사건으로 해체
  1. ↑ 일진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