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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특사 사건(1907)은 고종이 을사늑약의 무효를 국제 사회에 알리려고 네덜란드 헤이그의 제2회 만국 평화 회의에 이상설·이준·이위종을 특사로 보낸 사건으로, 일본은 이를 구실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긴 대한 제국은 공식 외교 경로를 쓸 수 없었다. 고종은 1907년 6월 헤이그에서 만국 평화 회의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비밀리에 특사를 보내기로 했다. 이준은 전덕기·이회영 등의 도움으로 고종에게 특사 파견을 건의했고, 고종의 친서와 신임장을 받았다.[1]

  • 이상설 - 정사. 전 의정부 참찬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준과 합류했다.
  • 이준 - 부사. 1907년 4월 서울을 떠나 블라디보스토크·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쳐 6월 25일 헤이그에 닿았다.
  • 이위종 - 주러시아 공사 이범진의 아들로, 외국어에 능해 통역과 연설을 맡았다.
  • 회의 참석 실패 - 일본과 영국 대표의 방해로 정식 대표로 인정받지 못했다.
  • 국제 여론 호소 - 세 특사는 일본의 침략을 고발하고 을사늑약이 무효라는 공고사(控告詞)를 의장과 각국 대표에게 보내고 신문에 실었다. 이위종은 각국 기자들 앞에서 「한국을 위한 호소」를 연설했다. 언론은 호의적이었으나 열강 대표들은 냉담했다.
  • 이준의 순국 - 이준은 1907년 7월 헤이그에서 숨졌다.
  • 고종 강제 퇴위 - 통감 이토 히로부미와 이완용 내각, 일진회가 양위를 압박했다. 7월 20일 양위식이 강행되어 순종이 즉위했다.
  • 한일 신협약(1907.7.24) - 퇴위 나흘 뒤 정미 7조약을 강요해 차관 정치를 시작했다.
  • 군대 해산(1907.8.1) - 신협약의 비밀 각서에 따라 대한 제국 군대가 해산되었다.
  • 정미의병 - 퇴위와 군대 해산에 맞서 해산 군인이 합류한 의병이 전국에서 일어났다(항일 의병 운동).

비슷한 외교 활동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활동 시기 내용
보빙사 파견 1883 미국과 수교한 뒤 보낸 사절단(민영익)
고종의 을사늑약 무효 친서 1907.1 『대한매일신보』에 실어 비준하지 않았음을 밝힘
헤이그 특사 1907 만국 평화 회의에 을사늑약 무효 호소 → 고종 강제 퇴위
파리 강화 회의 대표 1919 신한청년당이 김규식 파견
  1. ↑ 이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