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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부인(自由夫人)은 정비석이 1954년 『서울신문』에 연재한 장편 소설로, 6.25 전쟁 뒤 서구 문화가 밀려들며 바뀐 도시 중산층의 생활과 윤리를 그려 큰 인기와 논쟁을 함께 불러일으켰다.

1954년 1월 1일부터 8월 6일까지 『서울신문』에 215회 연재되었고, 그해 정음사에서 단행본으로 나왔다. 대학교수 장태연의 아내 오선영이 양품점에 나가 일하면서 사교춤에 빠져 가정이 무너질 뻔하다가 남편의 용서로 돌아온다는 줄거리이다. 단행본은 나온 날 초판 3,000부가 다 팔렸다.[1]

연재 중이던 1954년 3월 1일 서울대 법대 교수 황산덕이 『대학신문』에 이 소설을 비판하는 글을 실었다. 정비석은 3월 11일자 『서울신문』에 반박문을 냈고, 황산덕이 3월 14일 다시 반론을 펴면서 변호사·평론가들까지 가세해 작가의 윤리와 창작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으로 번졌다. 신문 소설의 윤리성과 창작의 자유를 처음으로 공론에 올린 사건으로 평가된다.[2]

1956년 한형모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그해 흥행 1위에 올랐다. 소설은 뒤에 1981년과 1990년에도 다시 영화로 만들어졌다.[3]

시대를 헷갈리기 쉬운 문화 현상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사실 시기
『자유부인』 출판, 사교춤 유행 1950년대 (이승만 정부)
「아리랑」 단성사 개봉, 모던 걸·모던 보이 일제 강점기 (→ 나운규, 일제 강점기의 생활 문화)
『사상계』가 지식인 사이에 널리 읽힘 1950~1960년대
「아침 이슬」 금지곡 지정 1975 (→ 한국 대중가요의 역사)
  1. ↑ 자유부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2. ↑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을 둘러싼 논쟁, 우리역사넷(사료로 본 한국사),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3. ↑ 한국영화 베스트 10, 자유부인(한형모, 1956),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한국영상자료원,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