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메뉴 여닫기
환경 설정 메뉴 여닫기
개인 메뉴 여닫기
로그인하지 않음
지금 편집한다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될 수 있습니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General Sherman號 事件, 1866)은 1866년(고종 3) 7월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올라와 통상을 요구하며 행패를 부린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를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와 평양 군민이 불태운 사건으로, 1871년 신미양요의 원인이 되었다.

제너럴 셔먼호는 미국인 프레스턴의 배였으나, 중국 톈진에서 영국 메도스 상사와 용선 계약을 맺고 교역 물품과 대포·총을 싣고 조선으로 왔다. 선원은 미국인 선주·선장·항해사와 통역을 맡은 영국인 개신교 선교사 토머스, 영국인 화물 관리인, 중국인·말레이인 등 24명이었다. 병인박해로 프랑스의 보복 소문이 돌던 1866년 여름, 배는 장맛비로 불어난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 만경대 부근까지 올라와 통상을 강요했다. 조선 관리는 통상은 국법으로 금지되어 있다고 거절하면서도 먼 나라 사람을 너그럽게 대한다는 원칙에 따라 음식을 주었다.[1]

비가 그쳐 강물이 줄자 배가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고, 선원들은 평양의 중군 이현익을 붙잡아 가두고 대포와 총을 쏘아 사람들을 죽였다.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는 화공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판단해 불붙인 배를 띄워 셔먼호를 불태웠다. 토머스 등 살려 달라고 나온 선원은 붙잡혔으나 분노한 군민에게 맞아 죽었고, 승무원 전원이 목숨을 잃었다. 박규수의 장계는 『고종실록』에 실려 있으며, 고종은 공을 세운 관리들에게 상을 내렸다.[2]

미국은 1867년 슈펠트, 1868년 페비거를 보내 사건을 탐문했고, 셔먼호 선원들의 도발이 화를 불렀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강경론을 택해 1871년 로저스 제독의 함대를 강화도로 보냈고, 이것이 신미양요이다.[1]

같은 시기 사건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사건 때 내용
병인박해 1866 초 프랑스 신부와 천주교도 처형
제너럴 셔먼호 사건 1866.7 평양 대동강에서 미국 상선을 불태움, 박규수
병인양요 1866.9~10 프랑스 함대 강화도 침입, 외규장각 도서 약탈, 정족산성 전투
오페르트 도굴 사건 1868 남연군 묘 도굴 시도
신미양요 1871 미국 함대 강화도 침입, 광성보 전투, 척화비 건립
  1. ↑ 1.0 1.1 제너럴셔먼호 사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제너럴 셔먼호 사건, 사료로 본 한국사,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