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학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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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 운동(朝鮮學運動)은 1934년 정약용 서거 99주기를 계기로 안재홍·정인보·문일평 등 국내 민족주의 학자들이 『여유당전서』를 펴내고 실학과 우리 고유의 역사·문화를 연구하자며 벌인 학술 문화 운동이다.
1930년대 일제는 조선사 편수회를 앞세워 관 주도로 식민지 역사를 연구했고, 만주 사변 뒤 정치적인 민족 운동은 더욱 어려워졌다. 비타협적 민족주의 진영은 이런 때의 '최선의 차선책'으로 문화 운동에 눈을 돌렸다. 1934년 9월 신조선사가 정약용 서거 99주기를 맞아 그의 전집 『여유당전서』 간행을 추진했고, 정인보·안재홍·문일평·현상윤을 연사로 기념 강연회를 열었다. 이를 계기로 조선학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1]
- 『여유당전서』 간행 - 안재홍과 정인보가 교열을 맡아 신조선사에서 1934년부터 1938년까지 펴냈다. 정약용의 『목민심서』·『경세유표』·『흠흠신서』 등을 모은 전집이다.
- 정인보 - 「다산 선생과 조선학」이라는 강연에서 정약용 연구를 조선학과 이어 이해했다. 우리 역사의 주체를 '얼'에서 찾는 '조선 얼'을 강조했다.
- 안재홍 - 1934년 9월 10일 『조선일보』 사설 「정다산의 위적」 등에서 조선학의 뜻을 정리했다. 독립기념관 자료는 이 사설을 정인보와 상의해 썼다고 전한다.[2]
- 문일평 - 조선심(朝鮮心)을 내세우고 역사를 대중에게 쉽게 풀어 썼다.
- 실학 - 이 운동을 거치며 조선 후기의 개혁 사상을 가리키는 '실학'이 학술 용어로 자리 잡았다.
사회 경제 사학자들은 참된 조선학은 유물 사관에 바탕을 둔 과학적 방법으로만 세울 수 있다고 비판했다. 조선 고유의 문화를 탐구한다는 목표를 내걸었으나, 종래의 문헌학적·해석학적 방법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