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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2000~1500년 무렵부터 철기가 보급되는 기원전 5세기 무렵까지, 한반도와 만주에서 청동기를 만들어 쓰고 벼농사가 시작되며 계급과 정치 권력이 나타난 시기이다.

청동기 시대에도 일상의 농기구와 공구는 여전히 돌로 만들었다. 청동은 구하기 어렵고 만들기 까다로워 무기·의례 도구·장신구 같은 지배층의 물건에 주로 쓰였다. 청동기를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 사이의 차이는 곧 권력의 차이가 되었다.[1]

생산력이 늘어 남는 생산물이 생기자 사유 재산과 빈부의 차이가 나타났고, 부족 사이의 전쟁이 잦아졌다. 힘센 부족이 약한 부족을 정복하며 군장이 다스리는 사회가 생겼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고조선이 성립했다.

  • 비파형 동검: 악기 비파처럼 몸체가 볼록한 청동 칼. 요령 지방에서 많이 나와 요령식 동검이라고도 한다. 만주와 한반도에 걸쳐 나와 고조선의 세력 범위를 보여 주는 자료로 쓰인다.[2]
  • 거친무늬 거울: 뒷면에 거친 기하학 무늬를 넣은 청동 거울. 제사장·군장의 의례 도구였다.
  • 청동 방울: 의례 때 흔든 방울. 후기로 가면 팔주령 같은 정교한 방울이 나타난다.
  • 민무늬 토기: 무늬가 없는 토기. 바닥이 납작하다. 미송리식 토기는 고조선의 대표 토기로 꼽힌다.
  • 반달 돌칼: 반달 모양의 간석기로, 벼 이삭을 따는 데 썼다.
  • 벼농사: 조·보리·콩 등 밭농사에 더해 일부 저습지에서 벼농사가 시작되었다.
  • 주거: 집터는 구릉이나 산기슭에 자리 잡았고, 움집은 직사각형으로 바뀌며 점차 지상 가옥에 가까워졌다. 마을 둘레에 도랑(환호)과 목책을 두르기도 했다.
  • 무덤: 지배층의 무덤으로 고인돌과 돌널무덤을 만들었다. 큰 덮개돌을 옮겨 고인돌을 쌓으려면 많은 사람을 동원해야 했으므로, 고인돌은 강한 권력을 가진 지배자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 탁자식(북방식)과 바둑판식(남방식) 등이 있다. 강화·고창·화순의 고인돌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 유산이다.
  • 사회: 계급이 생기고 남녀의 역할이 나뉘었다. 제정일치의 지배자인 군장이 등장했다.
유적 내용
부여 송국리 청동기 시대 중기의 대표 마을 유적. 둥근 집터, 비파형 동검, 탄화미가 나왔다.
여주 흔암리 탄화미가 나와 벼농사의 근거가 되었다.
강화 부근리 대표적인 탁자식 고인돌.

구석기·신석기 시대와의 비교

편집 원본 편집
모습 시대
막집에 살며 사냥과 채집으로 옮겨 다님 구석기 시대
가락바퀴로 실을 뽑고 빗살무늬 토기에 저장함 신석기 시대
철제 농기구 보급, 명도전·오수전 등 중국 화폐 사용 철기 시대
  1. ↑ 청동기시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동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