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애국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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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애국단(韓人愛國團, 1931~)은 침체에 빠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되살리려고 김구가 1931년 중국 상하이에서 조직한 의열 투쟁 단체로, 1932년 이봉창의 도쿄 의거와 윤봉길의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의거를 일으켰다.

1920년대 후반 임시정부는 연통제가 무너지고 국민 대표 회의가 결렬된 뒤 자금과 인력이 모두 부족했다. 1931년 일제가 만주 사변을 일으켜 정세가 급박해지자, 임시정부는 일제 요인을 처단하는 특무 활동으로 돌파구를 찾기로 했다. 국무 회의는 재정 수입의 절반을 특무 활동에 쓰기로 하고 그 책임을 김구에게 맡겼다. 이 특무 조직이 한인 애국단이며, 백과사전은 1931년 12월 13일 이봉창의 입단 선서식 때부터 이 이름이 쓰였다고 적는다.[1]
단장 김구 아래 이유필·안공근·김석 등이 간부를 맡았다. 단원을 미리 두지 않고, 거사를 앞둔 사람이 그때그때 입단 선서를 하고 단원이 되는 방식이었다. 단원으로는 이봉창·윤봉길·이덕주·유진만·최흥식·유상근 등이 있었다.[1]
- 이봉창 의거(1932년 1월 8일) - 이봉창이 도쿄 경시청 앞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던 일왕의 행렬에 폭탄을 던졌다. 일왕을 죽이지는 못했고 이봉창은 체포되어 사형되었다.
- 윤봉길 의거(1932년 4월 29일) - 윤봉길이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천장절) 겸 상하이 사변 승전 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져 시라카와 요시노리 대장 등을 죽이고 여러 일본 요인에게 중상을 입혔다. → 윤봉길
- 국내외 거사 계획 - 이덕주·유진만을 국내에 보내 조선 총독 처단을 꾀했고, 최흥식·유상근을 다롄에 보내 관동군 사령관 등을 노렸으나 모두 사전에 발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