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메뉴 여닫기
환경 설정 메뉴 여닫기
개인 메뉴 여닫기
로그인하지 않음
지금 편집한다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될 수 있습니다.

햇볕 정책은 김대중 정부(1998~2003)가 북한과의 화해·협력과 교류를 늘려 북한 스스로 변화할 여건을 만들려 한 대북 정책으로, 공식 이름은 '대북 화해 협력 정책'(대북 포용 정책)이며 노무현 정부의 평화 번영 정책으로 이어졌다.

이름은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은 세찬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이었다는 이솝 우화에서 따왔다. 1970년대 서독의 동방 정책처럼, 당장의 통일보다 평화 공존을 먼저 이루고 교류로 북한을 개방으로 이끌겠다는 구상이었다. 북한이 '햇볕'이라는 표현을 흡수 통일을 노린 술책이라며 반발하자, 정부는 공식 명칭을 화해 협력 정책·포용 정책으로 바꾸어 불렀다.[1]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2월 취임하며 대북 정책의 3원칙을 밝혔다.

  • 한반도의 평화를 깨는 어떠한 무력 도발도 용납하지 않는다.
  • 북한을 흡수 통일하거나 해치지 않는다.
  • 남북 사이의 화해와 협력을 적극 추진한다.

교류를 운용하는 원칙으로는 정치와 경제를 떼어 놓고 민간의 경제 협력을 넓히는 정경 분리와 상호주의를 내세웠다. 1998년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 1999년 서해 교전 같은 도발이 있었으나 정책 기조를 유지했다.[2]

  • 민간 교류 - 1998년 정주영 현대 그룹 명예 회장이 소 떼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어 방북했고, 그해 11월 바닷길로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었다.
  • 베를린 선언(2000년 3월) - 독일 베를린 자유 대학에서 남북 경제 협력과 특사 교환을 제안해 정상 회담의 길을 열었다.[3]
  • 첫 남북 정상 회담(2000년 6월) - 6·15 남북 공동 선언을 발표했고, 이산가족 상봉, 경의선 연결, 개성 공업 지구 개발 합의가 뒤따랐다.
  • 냉전적 대결에서 화해와 공존으로 남북 관계를 바꾸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 정상 회담을 앞두고 북한에 비밀리에 돈을 보낸 대북 송금 사건이 드러나 투명성 논란이 일었다. 지원이 북한 쪽으로만 흘러 상호주의가 지켜지지 않았고,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정부별 대북 정책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정책·사건 정부
7·4 남북 공동 성명, 남북 조절 위원회 박정희 정부
북방 외교,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남북 기본 합의서 노태우 정부
햇볕 정책, 금강산 관광 시작, 6·15 남북 공동 선언 김대중 정부
평화 번영 정책, 개성 공단 가동, 10·4 남북 정상 선언 노무현 정부
  1. ↑ 대북화해협력정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2. ↑ 6·15 남북 공동 선언, 우리역사넷(사료로 본 한국사),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3. ↑ 김대중 대통령 베를린 선언, 기록으로 보는 남북회담, 국가기록원,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