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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換局)은 조선 숙종 때를 전후해 국왕의 뜻에 따라 집권 붕당을 한꺼번에 바꾸어 정국을 뒤집은 일로, 경신환국·기사환국·갑술환국이 대표적이다.

'국면을 바꾼다'는 뜻이다. 현종 때까지 서인과 남인은 예송 등으로 다투면서도 서로 견제하며 공존했다. 숙종은 한 붕당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막고 왕권을 세우려고, 계기가 생길 때마다 집권 세력을 통째로 갈아 치웠다. 그 결과 국왕의 주도권은 강해졌지만, 밀려난 쪽은 사형과 유배로 큰 희생을 치렀고 상대 당을 아예 없애려는 일당 전제의 경향이 짙어졌다. 우리역사넷은 환국을 견제와 공존의 붕당 정치에서 국왕이 고르게 인재를 쓰는 탕평 정치로 넘어가는 사이의 과도기적 정치 형태로 본다.[1]

  • 경신환국(1680, 숙종 6) - 남인 영의정 허적이 집안 잔치에 궁중의 기름 천막(유악)을 허락 없이 가져다 쓴 일로 숙종이 군권을 서인에게 넘겼고, 이어 허적의 서자 허견이 종친 복창군·복선군·복평군과 역모를 꾀했다는 고변(삼복의 변)으로 남인이 크게 쫓겨났다.[2] 이후 남인 처벌을 놓고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졌다.
  • 기사환국(1689, 숙종 15) - 희빈 장씨가 낳은 아들을 원자로 정하는 데 반대한 서인을 몰아내고 남인이 집권했다. 송시열이 사사되고 인현 왕후가 폐위되었다.
  • 갑술환국(1694, 숙종 20) - 인현 왕후를 다시 왕비로 맞고 남인을 몰아내 서인(노론·소론)이 다시 집권했다. 송시열 등은 관직을 되찾았고, 남인 민암·이의징은 사사되었다.[3]
  • 정미환국(1727, 영조 3) - 영조가 노론의 보복 정치를 막으려 소론 중심으로 정권을 바꾼 일로, 탕평 이전의 마지막 환국이다. 이듬해 이인좌의 난을 겪은 뒤 영조는 탕평책을 본격적으로 폈다.

예송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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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때 쟁점
예송(기해·갑인) 1659·1674년, 현종 자의 대비의 상복 기간을 둘러싼 서인과 남인의 논쟁
환국 1680~1694년, 숙종 국왕이 집권 붕당을 통째로 교체
탕평 영조·정조 붕당을 고루 등용해 다툼을 누름
  1. ↑ 환국, 우리역사넷 교과서 용어 해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8 확인.
  2. ↑ 경신환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3. ↑ 갑술환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