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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산 전투(光敎山戰鬪, 1637)는 병자호란 때 전라도 병마절도사 김준룡이 남한산성을 구하러 북상하다가 수원·용인 사이의 광교산에 진을 치고 청군과 싸워 청 태종의 사위 양고리를 비롯한 장수들을 죽인 전투이다.

수원 화성에서 바라본 광교산

1636년(인조 14) 12월 청 태종이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와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들어가자, 조정은 각 도에 근왕병을 불렀다. 전라도 병마절도사 김준룡(1586~1642)은 관할 군사를 이끌고 올라오면서 곳곳에서 병력을 보탰고, 직산을 거쳐 광교산에 이르러 험한 산세를 이용해 진을 쳤다.[1]

  • 전과 - 청군 수만 명의 공격을 맞아 싸우며 청 태종의 사위(부마) 양고리(백양고라라고도 적는다)와 장수 여럿을 죽였다. 이긴 골짜기는 '오랑캐가 항복한 골짜기'라는 뜻의 호항골(胡降谷)이라는 이름으로 전한다.[2]
  • 이후 - 아군의 손실도 커서 김준룡은 기병 수백을 이끌고 수원으로 물러났다가 남쪽에서 다시 힘을 모으려 했다. 남한산성의 포위는 풀리지 않았고, 인조는 1637년 1월 삼전도에서 항복했다. 감사 이시방이 그의 공을 깎아내려 모함했으나 최명길 등의 도움으로 벌을 면했다.[1]
  • 평가 - 수원시 자료는 실록 1637년(인조 15) 1월 5일 기사를 들어 이 승전이 남한산성에서 버티던 이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고 소개한다. 백과사전의 인물 항목은 이 싸움을 큰 손실을 입고 물러난 전투로, 전승지 항목은 대승으로 적어 평가가 갈린다.

수원시 장안구 광교산에는 '김준룡 장군 전승지 및 비'가 있다. 바위에 승전 사실을 새긴 글은 수원 화성을 쌓을 때 돌을 캐러 간 사람들이 전한 이야기를 듣고 채제공이 새기게 했다고 전한다.[3]

호란·왜란의 전투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전투 전쟁 인물
동래성 전투(1592) 임진왜란 송상현
사르후 전투(1619) 명·후금 전쟁 (광해군 때 파병) 강홍립
길마재 전투(1624) 이괄의 난 진압 장만
용골산성 전투(1627) 정묘호란 정봉수
광교산 전투(1637) 병자호란 김준룡
흑룡강 전투(1654·1658) 나선 정벌 변급·신류
  1. ↑ 1.0 1.1 김준룡,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2. ↑ 수원의 인물: 김준룡, 수원시청, 2026-10-19 확인.
  3. ↑ 김준룡 장군 전승지 및 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