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메뉴 여닫기
환경 설정 메뉴 여닫기
개인 메뉴 여닫기
로그인하지 않음
지금 편집한다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될 수 있습니다.

권업회(勸業會, 1911~1914)는 1911년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에서 조직된 한인 자치·독립운동 단체로, 겉으로는 실업 장려를 내세우고 『권업신문』을 펴내며 1910년대 초 연해주 독립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권업회 기관지 『권업신문』(1912)

1911년 6월 1일 신한촌에서 발기회가 열려 최재형을 회장, 홍범도를 부회장으로 뽑았다. 같은 날 러시아와 일본이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어 드러내 놓고 독립운동을 하기 어려웠으므로, 이름과 목적은 한인의 농업·상업·공업·학업을 권장한다(권업)는 데 두었다. 실제로는 독립을 목표로 한 정치 단체였다.[1] 같은 해 12월 총회에서 조직을 의사부와 집행부로 나누고 의사부 의장에 이상설, 부의장에 이종호를 뽑았다.[2]

  • 조직 - 본부는 신한촌에 두고 하바롭스크·니콜스크(우수리스크) 등 주요 도시에 지회를 두었다. 회원은 3명 이상의 보증을 받아 엄격히 골라 받았다.[2] 회원 수는 백과사전이 1913년 2,600여 명, 1914년 8,579명으로 적고, 우리역사넷 연대기는 1914년 7월 무렵 1만여 명으로 적는다.[1]
  • 『권업신문』 - 1912년 4월 기관지 『권업신문』을 창간해 1914년 8월까지 126호를 냈다. 신채호·이상설·김하구가 주필을 맡았다.[1]
  • 광복군 양성 - 권업회를 모체로 1914년 무장 독립 전쟁을 준비하는 망명 정부인 대한 광복군 정부가 세워졌다.[1]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 러시아와 일본이 손을 잡자, 러시아 당국은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여 권업회를 강제로 해산하고 반일 활동을 하던 한인들을 추방했다. 해산 시기를 백과사전은 1914년 6월, 우리역사넷 연대기는 1914년 8월로 적는다. 권업회의 전통은 1917년 전로 한족 중앙회로 이어졌다.[2]

국외 독립운동 기지의 단체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지역 단체 내용
연해주 권업회(1911) 한인 자치 단체, 『권업신문』
연해주 대한 광복군 정부(1914) 권업회를 바탕으로 한 망명 정부
서간도 경학사(1911) 신민회 인사들의 자치 단체, 신흥 강습소
북간도 중광단(1911) 대종교 계열의 항일 단체
멕시코 숭무 학교(1910) 무관 양성 학교
일본 도쿄 2.8 독립 선언(1919) 유학생들의 독립 선언
  1. ↑ 1.0 1.1 1.2 1.3 권업회, 한국사 연대기,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2026-10-19 확인.
  2. ↑ 2.0 2.1 2.2 권업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