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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광단(重光團, 1911~1919)은 1911년 3월 북간도 왕청현에서 서일 등 대종교 신자들이 조직한 항일 단체로, 1919년 대한 정의단으로 커졌다가 북로 군정서로 이어졌다.

중광단을 이끈 서일

국권을 잃은 뒤 북간도로 건너간 대종교 신자들은 1911년 서일을 중심으로 중광단을 만들었다. 우리역사넷 교과서 용어해설은 서일·계화·채오·양현 등을 설립자로 들고,[1] 『한민족독립운동사』는 의병과 무관 학교 출신 간부들을 모았다고 적는다. 무장 투쟁을 지향했으나 처음에는 무기를 갖출 힘이 없어 정신 교육에 힘썼다.[2]

  • 민족 교육 - 1911년부터 1916년까지 북간도에 25개의 민족 학교를 세워 운영하며 인재를 길렀다.[3]
  • 무장 투쟁 준비 - 1917년 대종교 2대 교주 김교헌이 북간도로 망명한 뒤 본격적으로 무장 투쟁을 준비하고, 블라디보스토크·니콜스크·밀산 등에 사람을 보내 연해주·북만주의 독립운동 세력과 이으려 했다.[3]
  • 3.1 운동 - 1919년 북간도의 만세 시위를 이끌었다.[3]

대한 정의단과 북로 군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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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의 열기가 북간도에 전해지자 중광단은 다른 세력과 손잡고 1919년 5월 대한 정의단을 세우며 해체되었다(단장 서일, 기관지 『일민보』·『신국보』). 대한 정의단은 1919년 10월 길림 군정사와 합쳐 대한 군정부가 되었고, 12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요청으로 이름을 대한 군정서로 바꾸어 임시정부 산하 군사 기관이 되었다. 서간도의 서로 군정서와 구별해 북로 군정서라 불렸으며, 김좌진이 이끈 이 부대가 1920년 청산리 전투에서 이겼다.[1]

만주·연해주의 초기 단체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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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때 곳 내용
중광단 1911 북간도 왕청현 대종교 계열, 북로 군정서의 뿌리
경학사 1911 서간도 삼원보 신민회 인사들의 자치 단체, 신흥 강습소
권업회 1911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한인 자치 단체, 『권업신문』
대한 광복군 정부 1914 연해주 이상설·이동휘의 망명 정부
  1. ↑ 1.0 1.1 북로 군정서, 교과서 용어해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2026-10-19 확인.
  2. ↑ 5) 3·1 독립운동과 무장독립 단체의 조직, 『한민족독립운동사』 4 독립전쟁,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2026-10-19 확인.
  3. ↑ 3.0 3.1 3.2 중광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