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권을 잃은 뒤 북간도로 건너간 대종교 신자들은 1911년 서일을 중심으로 중광단을 만들었다. 우리역사넷 교과서 용어해설은 서일·계화·채오·양현 등을 설립자로 들고,[1] 『한민족독립운동사』는 의병과 무관 학교 출신 간부들을 모았다고 적는다. 무장 투쟁을 지향했으나 처음에는 무기를 갖출 힘이 없어 정신 교육에 힘썼다.[2]
3.1 운동의 열기가 북간도에 전해지자 중광단은 다른 세력과 손잡고 1919년 5월 대한 정의단을 세우며 해체되었다(단장 서일, 기관지 『일민보』·『신국보』). 대한 정의단은 1919년 10월 길림 군정사와 합쳐 대한 군정부가 되었고, 12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요청으로 이름을 대한 군정서로 바꾸어 임시정부 산하 군사 기관이 되었다. 서간도의 서로 군정서와 구별해 북로 군정서라 불렸으며, 김좌진이 이끈 이 부대가 1920년 청산리 전투에서 이겼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