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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석주(羅錫疇, 1892~1926)는 황해도 재령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의열단원으로서 1926년 12월 28일 경성의 조선 식산 은행과 동양 척식 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일본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 자결했다.

나석주

젊은 시절 만주로 건너가 신흥 무관 학교에서 군사 훈련을 받았다.[1] 3.1 운동 뒤 황해도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만주 독립운동 단체를 돕는 군자금을 모으고 밀정을 처단하다가, 경찰의 추적이 좁혀 오자 1921년 배를 타고 중국으로 망명했다. 상하이에서는 한국 노병회에 들어갔고, 중국 군관 학교를 거쳐 중국군 장교로 근무했다. 1924년 베이징에서 의열단에 가입했고, 같은 해 임시정부 경무국 경호원이 되어 김구의 지휘 아래 임시정부를 지켰다.[2]

  • 계획 - 1926년 국내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온 유림 김창숙이 의열 투쟁을 계획하자, 김구가 실행할 사람으로 나석주를 추천했다. 김창숙에게서 자금을 받아 무기를 마련했다. 노린 곳은 토지 수탈의 상징인 동양 척식 주식회사와 식민지 산업 자금을 대던 조선 식산 은행이었다.[2]
  • 잠입 - 12월 24일 홀로 배에 올라 27일 인천으로 들어와, 그날 밤 경성 숭례문 근처 중국인 여관에 묵었다.
  • 거사 - 12월 28일 오후 2시 무렵 중국인 행세를 하며 남대문통의 조선 식산 은행에 들어가 폭탄을 던졌으나 터지지 않았다. 곧바로 황금정(지금의 을지로)의 동양 척식 주식회사 경성 지점으로 가서 권총으로 직원들을 쏘고 폭탄을 던졌으나 이것도 터지지 않았다. 거리로 나와 경찰 간부를 쏘고 추격을 받자 "2천만 민중아, 분투하여 쉬지 말아라"라고 외친 뒤 권총으로 자기 가슴을 쏘았다. 병원으로 옮겨진 뒤 의열단원 나석주라고 밝히고 숨을 거두었다.[2][1]

폭탄은 모두 불발했으나, 대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식민지 경제 수탈 기관을 습격한 이 의거는 큰 충격을 주었다. 정부는 1962년 건국 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의열단원의 의거와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연도 인물 대상
1920 박재혁 부산 경찰서
1921 김익상 조선 총독부
1923 김상옥 종로 경찰서
1924 김지섭 도쿄 니주바시(일본 왕궁)
1926 나석주 조선 식산 은행, 동양 척식 주식회사
1932 이봉창·윤봉길(한인 애국단) 일왕, 상하이 훙커우 공원 행사 (→ 대한민국 임시정부)
  1. ↑ 1.0 1.1 영화 '밀정'의 쌍권총 명사수는? 총과 폭탄을 든 독립운동가들, 내 손안에 서울, 서울특별시, 2024-03-06 게재, 2026-10-19 확인.
  2. ↑ 2.0 2.1 2.2 나석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