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척식 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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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척식 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 1908~1945)는 1908년 일본이 한국의 토지와 자원을 차지하고 일본인 농업 이민을 들여오기 위해 세운 국책 회사로, 일제 강점기 내내 대지주이자 식민지 금융 기관으로서 경제 수탈의 상징이 되었다. 줄여서 '동척'이라 한다.

- 토지 확보 - 정부 출자지 약 1만 7,700정보에 더해 1909년부터 땅을 사들여 1913년 말에는 매수지만 4만 정보를 넘었다. 토지 조사 사업으로 총독부가 차지한 국유지도 싼값에 넘겨받아 조선 최대의 지주가 되었다.
- 소작 경영 - 넓은 땅을 한국인 소작농에게 빌려주고 수확의 절반 안팎을 소작료로 거두었다. 1920년대에는 산미 증식 계획과 맞물려 토지 개량 사업도 벌였다.
- 일본인 농업 이민 - 동척 땅을 나누어 주고 25년에 걸쳐 갚게 하는 방식으로 일본 농민을 불러들였다. 처음에는 직접 농사짓는 자작형이 많았으나, 점차 조선인 소작농을 부리는 지주형 이민으로 바뀌었다. 300만 명을 옮기겠다던 계획과 달리 실제 정착은 4,000호 남짓(1933년 말 3,895호)에 그쳤다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적고, 문춘미의 연구는 1926년까지 받아들인 이민을 9,000가구 안팎으로 본다. 이민에게 경작지를 내주려고 기존 한국인 소작농의 경작권을 빼앗았기 때문에 거센 반발을 샀고, 땅을 잃은 농민 상당수가 만주 등지로 떠났다.[1][2]
1917년 법을 고쳐 영업 지역을 '조선 및 외국'으로 넓히고 본점을 도쿄로 옮겼다. 이때부터 만주·중국·남양 군도까지 진출해 대출과 투자를 주로 하는 척식 금융 기관이 되었다. 납입 자본금의 10배(1938년부터 15배)까지 사채를 낼 수 있는 특혜를 받았고, 전시에는 군수 관련 회사의 주식을 사들여 지주 회사 구실을 했다.[1]
- ↑ 1.0 1.1 1.2 동양척식주식회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 ↑ 2.0 2.1 문춘미, 「20세기초 한국의 일본농업이민연구: 동양척식회사를 중심으로」, 『한림일본학』 23,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2013, 초록 2026-10-19 확인.
- ↑ 북률동척농장 소작쟁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 ↑ 농지개혁법으로 '우리 땅'의 꿈을 이루다,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국가기록원,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