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면북양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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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면북양 정책(南綿北羊政策)은 1930년대 일제가 군수 원료인 면화와 양털을 자급하려고 한반도 남부에는 면화 재배를, 북부에는 양(면양) 사육을 강요한 식민지 농업 정책이다.
1929년 대공황 뒤 세계 경제가 블록으로 쪼개지고 보호 무역이 강해지자, 일본은 군복·군수품의 원료로 쓰이는 면화와 양털을 계속 수입에 기대기 어려워졌다. 인도와의 무역 마찰로 인도산 면화를 들여오기도 어려워졌다. 1931년 만주 사변 뒤 준전시 체제에 들어서면서, 일본은 그 부족분을 식민지 조선에서 채우기로 했다. 기후와 토양을 근거로 예부터 면화를 길러 온 남부는 면화 증산 지대로, 초지가 많고 서늘하며 비가 적은 북부는 양 사육 지대로 정했다. 조선 총독부가 이를 집행했다.[1]
- 면화 증산(남면) - 1920년대에는 국제 면화값이 떨어져 면화 생산이 부진했다. 1930년대 들어 총독부는 남부 지방 농가에 면화 재배 면적을 할당하고 증산을 독려했다.
- 면양 장려(북양) - 일제는 1918년부터 25년 동안 일본과 조선에서 면양 100만 마리를 늘린다는 계획을 세웠고, 총독부는 조선에서만 30만 마리를 늘리려 했다. 그러나 기후 등의 조건이 맞지 않아 1924년 계획을 접었다가 1934년 다시 밀어붙였다. 동양 척식 주식회사도 직영 사업으로 면양 사업을 벌였다.[1][2]
- 수탈 강화 - 1930년대에는 쌀뿐 아니라 면화와 누에고치를 거두어 가는 양도 크게 늘었다.[3]
기후와 여러 조건이 맞지 않아 면화와 양털 생산은 목표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농민들은 지나치게 많은 공출량을 할당받아 고통을 겪었고, 식량 작물 대신 일제가 필요로 하는 작물을 기르게 되어 농촌의 산업 구조가 일제의 계획에 따라 뒤틀렸다.[1] 남면북양 정책은 공업 원료를 조선에서 조달하려 한 '조선 공업화' 정책, 그리고 중일 전쟁 뒤의 병참 기지화 정책과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