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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읍(祿邑)은 신라와 고려 초에 관료에게 일정한 지역을 정해 주어 그곳에서 조세와 공물, 노동력 등을 거두게 한 제도로, 통일 신라 신문왕이 689년 폐지했다가 경덕왕이 757년 되살렸다.

신라가 주변 세력을 복속시키며 그 우두머리들을 귀족 관료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이들에게 보수로 지역 하나를 떼어 주던 것이 녹읍이다. 녹읍을 받은 귀족은 그 지역에서 곡식을 거둘 뿐 아니라 사람과 물자까지 부릴 수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다만 거둘 수 있었던 범위가 조세에 그쳤는지, 공물과 노동력까지였는지는 학계 견해가 엇갈린다.[1]

  • 관료전 지급(687) - 신문왕은 687년 5월 교서를 내려 문무 관료에게 관료전을 차등 있게 주었다.[2] 관료전은 토지 자체가 아니라 거기서 나는 곡식 일부를 받을 권리(수조권)에 가까운 것으로 본다.
  • 녹읍 폐지(689) - 689년 정월 중앙과 지방 관리의 녹읍을 없애고 해마다 조(租)를 차등 있게 나누어 주는 것을 법식으로 삼았다.[3] 귀족이 백성을 사사로이 지배하는 바탕을 끊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조치였다.
  • 녹읍 부활(757) - 귀족 세력이 다시 힘을 얻자 경덕왕은 757년 3월 관리들에게 주던 녹봉을 없애고 녹읍을 다시 주었다.[4] 이후 녹읍은 신라 말까지 이어졌고, 799년에는 국학 학생에게도 녹읍을 주었다. 고려 초인 934년에도 녹읍 기록이 보인다.

689년 기사는 녹읍 대신 '해마다' 조를 주었다고 했는데, 757년 기사는 없앤 것이 '매달 주던 녹봉(월봉)'이라고 적었다. 두 기사 사이에 지급 방식이 바뀌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토지 제도와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제도 시기 내용
녹읍 신라~고려 초 지역 단위로 조세·공물·노동력 수취
관료전 687년 신문왕 관리에게 수조권을 주는 토지
정전 722년 성덕왕 백성에게 토지를 나누어 줌
역분전 940년 고려 태조 공을 세운 사람에게 인품에 따라 줌
과전법 1391년 고려 공양왕 경기 토지의 수조권을 관리에게 줌 (→ 과전법)
직전법·관수관급제 조선 세조·성종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 (→ 조선 전기의 토지 제도)
공법(전분 6등법·연분 9등법) 1444년 조선 세종 땅의 등급과 그해 풍흉에 따라 전세를 거둠 (→ 조선 전기의 토지 제도)
  1. ↑ 녹읍,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2. ↑ 『삼국사기』 권8 신라본기 신문왕 7년 5월, 문무관료전을 하사하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3. ↑ 『삼국사기』 권8 신라본기 신문왕 9년 1월, 녹읍을 혁파하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4. ↑ 『삼국사기』 권9 신라본기 경덕왕 16년 3월, 녹봉을 없애고 녹읍을 주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