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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협회(獨立協會, 1896~1898)는 1896년 서재필 등이 자주독립 국가의 기틀을 세우려고 만든 사회 정치 단체로, 독립문을 세우고 만민 공동회를 열어 자주 국권·자유 민권·자강 개혁을 추구하다가 1898년 정부에 의해 해산되었다.

아관 파천(1896) 이후 열강이 이권을 다투어 빼앗아 가던 때, 미국에서 돌아온 서재필이 독립신문을 창간(1896년 4월)하고 같은 해 7월 독립 협회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이완용 등 정부 관료가 많이 참여한 사교 단체 성격이었으나, 1897년 무렵부터 토론회를 열고 회원으로 일반 시민·학생·상인이 늘면서 민중 운동 단체로 바뀌었다. 지도층에는 서구 시민 사상을 받아들인 개혁 관료와 유학자, 신지식인이 함께 있었다.[1]

  • 독립문 건립 - 청 사신을 맞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 근처에 독립문을 세웠다(1897년 완공). 왕실·관리·백성의 모금으로 비용을 마련했다. 모화관은 고쳐 독립관으로 삼고 집회 장소로 썼다.
  • 자주 국권 운동 -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를 막아 내고, 한러 은행을 닫게 했으며, 러시아인 재정 고문과 군사 교관을 돌려보내게 했다.
  • 만민 공동회 - 1898년 3월 서울 종로에서 처음 열린 민중 대회이다. 누구나 연설할 수 있는 근대적 민중 집회로, 열강의 이권 침탈을 규탄했다.
  • 관민 공동회와 헌의 6조 - 1898년 10월 정부 대신들도 참석한 관민 공동회에서 헌의 6조를 결의했고, 고종이 이를 받아들였다. 백정 출신 박성춘도 이 자리에서 연설했다. 외국에 의지하지 말 것, 이권 계약은 대신이 모두 서명할 것, 재정은 탁지부가 맡고 예산·결산을 공표할 것, 중대 범죄는 공개 재판할 것, 칙임관 임명은 정부의 뜻을 물을 것, 정해진 규정을 지킬 것 등이다.
  • 의회 설립 운동 - 중추원을 고쳐 의원 절반을 민선(독립 협회 회원)으로 뽑는 의회식 기구로 만들려 했다. 1898년 11월 중추원 관제가 개정되었다.

보수 세력은 독립 협회가 황제를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우려 한다는 익명서를 퍼뜨렸다. 고종은 1898년 11월 독립 협회 간부들을 잡아들이고 해산을 명했다. 만민 공동회가 이에 항의하며 시위를 이어 가자 정부는 보부상 단체인 황국 협회를 동원해 공격했고, 12월 군대로 만민 공동회를 해산시켰다.

개항기·대한 제국의 단체와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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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단체
독립문 건립 모금, 만민 공동회·관민 공동회, 헌의 6조 독립 협회(1896)
보부상을 모아 독립 협회를 공격함 황국 협회(1898)
서울 상인들의 상권 수호 운동 황국 중앙 총상회(1898)
공화정체 국가 수립을 지향, 친일 부호 처단 대한 광복회(1915)
고종의 밀지를 받아 국권 반환 요구서 제출 계획 독립 의군부(1912)
연통제, 독립 공채 발행 대한민국 임시정부(1919)
  1. ↑ 독립협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