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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 항일 연군(東北抗日聯軍, 1936~1940년대 초)은 1936년 3월 만주에서 중국 공산당이 동북 인민 혁명군을 확대·개편해 만든 항일 무장 부대로, 중국인과 한인이 함께한 연합 부대였으며 1937년 보천보 전투로 국내 진공을 벌이기도 했다.

동북 항일 연군 등 만주의 항일 투쟁을 기리는 하얼빈의 동북 열사 기념관

1931년 만주 사변 뒤 중국 공산당은 만주 각지에 항일 유격대를 조직했고, 1933~1934년 무렵 이를 동북 인민 혁명군으로 묶었다. 1936년 3월 「동북 항일 연군 통일 군대 건제 선언」에 따라 여러 항일 무장 세력을 아우르는 연합 전선으로 넓힌 것이 동북 항일 연군이다. 한인이 많았던 제1군·제2군 가운데 약 2,000명으로 추정되는 제2군은 절반이 한인이었고, 김일성·김책·최용건 등 많은 한인이 참여했다.[1]

  • 유격전 - 1936~1937년 동만주·남만주·북만주에서 일본군·만주국군과 치열하게 싸웠다. 1938년 남만주·동만주·북만주의 부대를 제1·2·3로군으로 재편했다.
  • 조국 광복회(1936) - 동북 항일 연군 안의 한인들이 중심이 되어 만주와 국경 지대의 한인을 모으는 반일 민족 통일 전선 조직으로 조국 광복회를 만들었다.
  • 보천보 전투(1937) - 1937년 6월 4일 밤 제2군 소속 김일성 부대가 압록강을 건너 함경남도 갑산군 보천보의 경찰 주재소·면사무소 등을 습격하고 조국 광복회의 강령과 격문을 뿌린 뒤 물러났다. 국내 신문에 크게 보도되었으나, 작은 마을의 주재소를 친 전투의 규모와 의미를 북한이 크게 부풀렸다는 평가도 있다.[2]

쇠퇴와 소련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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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1937년부터 '만주국 치안 숙청 계획'을 세워 대규모 토벌에 나섰고, 동북 항일 연군은 1940년대에 들어 사실상 무너졌다. 1940년 가을부터 남은 대원들은 소련 땅으로 넘어갔고, 1942년 하바롭스크 부근에서 소련 극동군의 제88 독립 보병 여단(교도 여단)으로 개편되었다. 광복 뒤 이들 가운데 다수가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했다.[1]

다른 무장 부대와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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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 성격 대표 활동
동북 항일 연군 중국 공산당 주도, 한중 연합(1936) 조국 광복회, 보천보 전투
한국 독립군 한국 독립당의 군대, 지청천(1930) 쌍성보·대전자령 전투
조선 혁명군 조선 혁명당의 군대, 양세봉 영릉가·흥경성 전투
조선 의용대 조선 민족 혁명당, 김원봉(1938, 한커우) 일부가 화북으로, 일부는 한국광복군에 합류
한국광복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군(1940) 인도·미얀마 전선, 국내 진공 작전 준비
  1. ↑ 1.0 1.1 동북항일연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보천보전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