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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군(韓國獨立軍, 1930~1933)은 1930년 북만주에서 결성된 한국 독립당의 군사 조직으로, 총사령관 지청천의 지휘 아래 중국군과 한중 연합 작전을 펼쳐 쌍성보·사도하자·동경성·대전자령 전투에서 일본군을 무찔렀다.

한국 독립군 총사령관이었던 지청천(가운데). 뒤에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낼 때의 모습이다.

1920년대 말 만주의 독립운동 세력은 참의부·정의부·신민부 3부를 통합하려는 운동 끝에 남만주의 국민부와 북만주의 혁신 의회로 갈라졌다. 혁신 의회 계열의 홍진·지청천·신숙 등은 1930년 7월 북만주에서 한국 독립당을 만들고, 그 군대로 한국 독립군을 편성했다. 지청천(이청천)이 총사령관을 맡았다. 같은 시기 남만주에서는 국민부·조선 혁명당 계열의 조선 혁명군이 활동했다.[1]

한중 연합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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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만주 사변으로 일제가 만주를 점령하자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항일 의용군이 일어났다. 한국 독립군은 중국 호로군(護路軍)과 협의해 한중 연합군을 꾸렸고, 뒤에는 길림 구국군과도 손잡았다.

  • 쌍성보 전투(1932) - 하얼빈 남쪽의 쌍성보를 중국군과 함께 공격해 점령했다.
  • 사도하자 전투(1933) - 일본군과 만주국군의 공격을 매복으로 물리쳤다.
  • 동경성 전투(1933) - 발해의 옛 도읍 부근인 동경성을 공략했다.
  • 대전자령 전투(1933) - 1933년 6월 말 길림 구국군과 함께 대전자령 고개에 매복해 철수하던 일본군을 기습했다. 4시간의 격전 끝에 군복 3,000벌, 대포·박격포, 소총 1,500정 등 막대한 군수품을 거두었다. 그러나 전리품 분배를 두고 중국군과 갈등이 생겨 연합이 깨졌다.[2]

관내 이동과 그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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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의 토벌이 거세지고 중국 측과의 연합도 흔들리자, 한국 독립군 지도부는 1933년 무렵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김구의 권유를 받아 중국 관내로 옮겼다. 대원 일부는 중국 국민당 정부의 뤄양 군관 학교 한인 특별반에 들어가 군사 교육을 받았다. 지청천은 1940년 충칭에서 창설된 한국광복군의 총사령관이 되어, 한국 독립군의 전통은 광복군으로 이어졌다.[1]

만주와 중국 관내의 무장 부대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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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 지역·시기 활동
한국 독립군 북만주, 1930~1933 한국 독립당, 지청천, 쌍성보·대전자령 전투
조선 혁명군 남만주, 1929~1930년대 조선 혁명당, 양세봉, 영릉가·흥경성 전투
동북 항일 연군 만주 전역, 1936~1940 중국 공산당 주도의 한중 연합 부대, 보천보 전투
북로 군정서 북간도, 1919~1920 대종교 계열, 김좌진, 청산리 전투
조선 의용대 중국 관내, 1938 김원봉, 일부가 한국광복군에 합류
한국광복군 충칭, 1940 임시정부 정규군, 총사령관 지청천
  1. ↑ 1.0 1.1 지청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대전자령 전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