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말 만주의 독립운동 세력은 참의부·정의부·신민부 3부를 통합하려는 운동 끝에 남만주의 국민부와 북만주의 혁신 의회로 갈라졌다. 혁신 의회 계열의 홍진·지청천·신숙 등은 1930년 7월 북만주에서 한국 독립당을 만들고, 그 군대로 한국 독립군을 편성했다. 지청천(이청천)이 총사령관을 맡았다. 같은 시기 남만주에서는 국민부·조선 혁명당 계열의 조선 혁명군이 활동했다.[1]
대전자령 전투(1933) - 1933년 6월 말 길림 구국군과 함께 대전자령 고개에 매복해 철수하던 일본군을 기습했다. 4시간의 격전 끝에 군복 3,000벌, 대포·박격포, 소총 1,500정 등 막대한 군수품을 거두었다. 그러나 전리품 분배를 두고 중국군과 갈등이 생겨 연합이 깨졌다.[2]
일본군의 토벌이 거세지고 중국 측과의 연합도 흔들리자, 한국 독립군 지도부는 1933년 무렵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김구의 권유를 받아 중국 관내로 옮겼다. 대원 일부는 중국 국민당 정부의 뤄양 군관 학교 한인 특별반에 들어가 군사 교육을 받았다. 지청천은 1940년 충칭에서 창설된 한국광복군의 총사령관이 되어, 한국 독립군의 전통은 광복군으로 이어졌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