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동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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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동묘(萬東廟)는 송시열의 유언에 따라 제자 권상하가 1703년(숙종 29) 충청도 괴산 화양동에 세운, 임진왜란 때 원군을 보낸 명 신종과 명의 마지막 황제 의종을 제사하는 사당이다.

- 국가의 지원 - 영조 때 제사용 토지와 노비를 받고 면세전 20결을 받았다. 1776년 정조가 즉위하며 어필로 현판을 내렸고, 1844년(헌종 10)부터는 관찰사가 봄·가을에 제사를 지냈다.
- 폐단 - 송시열을 모신 화양동 서원과 함께 노론의 근거지가 되었다. 유생들이 모여 위세를 부렸고, 화양동 서원이 멋대로 발행한 화양묵패는 누구도 어기기 어려울 정도였다.
- 철폐(1865) - 흥선 대원군이 권력을 굳힌 1865년(고종 2) 3월 만동묘를 없앴다. 서울의 대보단에서 명 황제를 제사하니 따로 제사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위패와 현판을 대보단의 경봉각으로 옮겼다. 전국 유림이 거세게 반발했다.[2]
- 복구(1874) - 1873년 대원군이 물러나자 이항로·최익현·송근수·송병선 등 유림이 상소를 올려 만동묘 복구를 건의했고, 이듬해 1874년(고종 11) 왕명으로 다시 세워졌다.
- 소멸 - 1907년 일본군이 의병을 토벌한다며 부속 건물을 불태웠고, 이듬해 통감부가 만동묘를 없앴다. 1942년 건물이 헐렸으며, 지금은 터와 묘정비가 남아 있다.[1]
- ↑ 1.0 1.1 만동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 ↑ 서원 철폐와 경복궁 중건, 『신편 한국사』 37,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